어원인문학 교실

앙팡(enfant)은‘어린이’를 가리키는 프랑스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우유 상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유는 주로 어린이를 연상시키므로‘어린이’라는 본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도 - 매우 드물긴 하지만 - 없잖아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어 앙팡(enfant)은 본래 어떤 뜻이었을까? 다시 말해 프랑스 사람들은 어린이를 어떤 존재로 보았을까? 그 해답은 이 단어의 어원에서 찾을 수 있다.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 파리(fari, 말하다) 앞에 부정(否定)을 나타내는 인(in-)을 붙인 인파리(infari)는‘말을 못하다’라는 의미였고 여기서 명사 인판스(infans)가 파생하였다. 프랑스어 앙팡(enfant)은 11세기 말에 이 인판스(infans)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프랑스 사람들은 어린이를‘말을 못하는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의 ‘어린이’는 ‘어리석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볼 때 두 민족 간의 시각 차이도 엿볼 수 있다.

사실 한국에는‘앙팡’보다는 ‘앙팡 떼리블’로 먼저 알려진 바 있다. ‘앙팡 떼리블’은 프랑스 작가 꼭또(J. Cocteau)가 1929년에 쓴 소설로, 4명의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비현실적인 악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앙팡 떼리블’에서‘떼리블’은 프랑스어 terrible로,‘무시무시한’,‘다루기 힘든’이라는 형용사다. 따라서‘앙팡떼리블르’는‘다루기 힘든 아이’로 해석할 수 있다. 사전에 보면 이 단어는“깜찍한 아이(어른이 당황할 만한 말을 하거나 묻거나 하는 아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설명에도 역시‘말’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앙팡’과 ‘떼리블’은 각각 ‘어린이’와 ‘무시무시한’, ‘다루기 힘든’이라는 의미로, 언뜻 보면 양립할 수 없어 보이지만‘말’을 매개로 하면 그런 대로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당돌하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어린이만큼 다루기 힘든 어린이가 없다. 오죽하면‘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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