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간의 뉴욕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반갑게 집어 든 한국신문에서 내 눈길을 끈 기사는 2면의 ‘슈퍼스타 K2’에서 우승한 허각에 대한 뉴스였다. 시청률 18.1%라는 케이블 TV 사상 최고 기록을 이뤄내며 23일 새벽 ‘한국판 폴 포츠’가 탄생되었다고 했다. 이 현대판 신데렐라 허각은 ‘인생역전’을 일구어 내었기에 더욱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허각이 슈퍼스타 K의 승자가 되던 날, 나는 뉴욕에서 또 다른 의미의 감동을 준 이화의 슈퍼스타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번 출장은 이화국제재단(International Foundation for Ewha Womans University)의 정기 이사회에 본교의 대외협력처장 자격으로 총장님과 동행하여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제 재단은 1966년 고 김활란 선생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시어 설립하신 재미 이화10년발전위원회가 1970년에 미국 Cooperating Board for Ewha Womans University와 합병하여 시작된 이화를 위한 미국 내 재단이다.

이곳에서 이화를 위해 재단이사로서 봉사하고 계시는 여러분의 또 다른 이화 가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나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한국말은 서투나 어머님이 졸업하신 이화를 위해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정기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는, 투자회사를 운영하시는 한국인 2세 이사, 불편하신 몸에 남편과 함께 워싱턴에서부터 오신 이화의 대선배님 부부이사, 돌아가신 부인이 한국인이셨다는 애시빌에서 동양종교학을 강의하고 계시는 미국인 이사, 6.25 전쟁 중 김활란 선생님의 도움으로 공부하였다고 지금도 보은하는 마음으로 재단 봉사를 하시는 공인회계사 이사, 어머님도 재단의 회장으로 봉사하시고 본인도 재단의 회장을 역임하신 세금전문가이자 대학의 부총장을 지내신 미국인 이사 등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되는 여러 분들이 계셨다. 이 분들은 이렇게 멀리서, 드러나지도 않으시면서 이화를 위해 기도하고, 이화의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립금을 운용하며 기금 모금에 참여하는 일 등을 통해 아무런 대가없이 묵묵히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러한 국제재단 이사님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평상시에는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이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 40여 년 간 그 모습이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 같은 바로 이화의 산 역사를 눈앞에서 보는 듯 했다.

그 산 역사 속에 주인공은 단연 이번 방문에서 우리의 마음에 가장 큰 감동을 주신 이범선이사님이셨다. 이사님은 일찍이 52년에 서울상과대를 졸업하시고 뉴욕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및 박사를 하시고는 공인회계사로서 뿐만 아니라 40여년간 뉴욕 롱아일랜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셨던 분이다. 이분의 이화와의 인연은 물론 사모님이신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수상하셨던 이향원박사님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1966년의 김활란 박사님과의 인연으로 국제재단이 공식 출범한 70년도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 했다. 작은 체구에 매우 또렷또렷하신 이목구비로부터는 회계전공자로서 수치에 빈틈없듯이, 생활도 그러실 것 같은 깐깐함과 깔끔함이 느껴졌지만 그와 더불어 성실함, 정직함, 바름이라는 어휘들이 어울리시는 참으로 뵙기 좋은 훌륭한 어른이셨다.

이 분이 이사회에서의 마지막 재정보고를 끝으로 재무이사직을 마치신다고 했다. 우리는 떠나기 전 감사패를 준비해 갔고 이사님의 재무 보고 후 총장님께서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셨다. 많은 이들의 눈가에 눈물이 핑돌았다. 왜냐하면 마지막 재무 보고를 마치신 이범선 박사님께서는 주섬주섬 안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시더니 유창하신 영어로 퇴임의 인사를 하기 시작하셨고 마지막 말씀을 몇 마디 남겨 놓으시고는 마침내 그간의 시간에 대한 감회로 울컥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사님은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재단회의에 빠지신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만으로도 참석한 우리들의 마음을 벅차게 하여주기에 충분하였다. 이사님은 지난 40년간 함께 일하신 재단 회장님이 9분이셨으며 이사는 모두 181명이 거쳐갔고, 5명의 사무국장과 함께 일하셨다고 했다. 물론 그 사이 이화에는 7분의 총장님이 계셨었다고 했다. 그 분이 봉사하셨던 40년은 그렇게 긴 세월이었던 것이다.

이화는 참으로 특별한 학교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스크랜튼 여사와 단 한명의 여학생으로 시작된 이화가 오늘날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교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셨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의 굽이굽이를 넘으며 124년을 맞은 이화에는 이러한 숨은 ‘슈퍼스타 K’가 도처에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가능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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