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올해 학제 간 융합연구 지원사업 예산 30억원 책정, 서울대·연세대·본교 등 대학 내 학제 개편 활발… 높은 학과 장벽, 의사 소통 부족은 해결 과제로 남아

<편집자주> 본지는 8월30일~9월2일 홍콩대, 홍콩과기대를 방문해 세계 대학의 학제 간 연구 현황을 살펴봤다.

<글 싣는 순서>
① 세계 대학들, 학제 간 연구에 주목하다
② 홍콩대, 홍콩과기대의 학제 간 연구…창의적 인재 양성
③ 한국, 학제 간 연구로 변화 모색

“한국 대학은 분과학문에 물들어 있지만 이제는 학문 전체를 보아야 할 때다. 여러 학문 분야의 학생, 교수가 한 이슈에 대해 고민하는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하다.”

2007년부터 4년째 ‘미래학문과 대학을 위한 범대학 콜로키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서울대 김광웅 명예교수(행정학과)의 말이다. 그는 학제 간 연구의 흐름에 대해 “학문 구분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통섭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제 간 연구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학제 간 연구의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국내에서도 학제 간 연구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대학의 융합연구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본교를 포함한 국내 유수 대학들은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하도록 학제를 개편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학제 간 연구 풍토 조성 위해 노력 중
정부는 2000년대 들어 학제 간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사업을 진행해왔다.

정부는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등 7개 부처를 중심으로 작년~2013년의 5개년에 이르는 융합기술개발관련 육성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융합기술 개발 분야에 약5조8천900억을 투자한다.

교과부는 2008년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World Class University) 사업을 시작해, 융합연구를 지원하는 제1유형(전공, 학과 개설 및 운영)을 통해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작년 2학기 WCU 사업을 통해 융·복합 학과 및 전공 32개가 신설됐다.

서울대는 이 사업을 통해 작년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를 개설하고, 의학 및 약학의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본교 또한 작년에 생명과학, 화학, 약학의 학제 간 연구가 이뤄지는 바이오융합과학과를 신설했다.

작년 6월에는 학제 간 연구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한국학술진흥재단과 한국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한 한국연구재단이 출범됐다.

한국연구재단은 올해 학제 간 융합연구 지원 사업에 예산 30억원을 배정했다. 이 예산은 개별 대학 및 연구소에서 이뤄지는 24개의 과제를 지원한다. 각 과제의 연구진은 인문, 사회계열과 이공계 중 어느 한 분야의 비율이 7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박찬모 이사장은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학문 간 소통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이공계 학문의 통합 마인드를 지닌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며 “국가연구개발정책의 새로운 방향 제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 속속 도입되는 학제 간 연구
서울대, 연세대, 본교 등 국내 대학들은 다양한 지식을 섭렵한 인재를 양성하고 효율적 연구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학부 및 대학원의 관련 학과를 신설하는 등 학제를 개편하고 있다.

서울대는 2001년 2학기 학제 간 연구를 바탕으로 연합전공을 개설했다. 연합전공 내에는 사회과학·인문학·공학·예술 등을 포함한 정보문화학, 공학·경영학·경제학 등을 포함한 기술경영학, 인문학·공학·보건학·자연과학 등을 포함한 글로벌환경경영학 등의 전공이 개설돼있다.

서울대 정보문화학과 주임 강남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최근 학문의 융·복합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인재를 양성할 새로운 교육 과정이 필요했다”며 “이질적인 학문 분야를 같은 울타리 안에서 공부하며 시너지 효과를 끄집어내는 것이 학제 간 연구의 목표”라고 말했다.

연합전공을 이수하는 서울대 박병선(디지털정보융합대학원)씨는 “언론정보학과와 문화콘텐츠 산업을 다각도에서 이해하고자 연합 전공에 지원했다”며 “여러 분야의 학생들과 공부하며 더 넓은 이해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작년 3월 대학원에도 학문 융합을 목적으로 한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설립했다. 대학원 내에는 나노융합학과, 디지털정보융합학과, 지능형융합시스템학과,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4개 융합학과가 개설됐다. 이들 학과는 물리, 화학, 수학 등의 기초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 사회, 생명과학, 의학, 공학 등을 학제적으로 통합해 신생 융합기술 분야의 연구를 이끌고 있다.

연세대는 2011년 송도 국제캠퍼스에 IT융합, 에너지환경, 나노공학 3개 전공이 포함되는 글로벌융합공학부를 개설한다. 이 학부에서는 기술, 인문, 예술, 디자인 등 학제를 통합한 교과목이 제공된다.

연세대 이재용 공과대학장은 “글로벌융합공학부를 통해 기술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 미래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 등을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국대는 인문대와 이과대를 통합한 기초학문대학을 신설하는 ‘미래비전 2020’안을 확정했다. 이는 학문 간 융합과 학제의 유연화를 목표로 한다. 동국대는 2015년까지 어문·사학·철학 등의 전공이 속한 문과대학과 수학·물리·통계학 등의 전공이 있는 이과대학을 통합할 계획이다.

본교는 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2002년 대학원에 디지털미디어학부(디미부)를 신설했다. 영상 콘텐츠, 미디어 공학, 미디어 디자인 등 세 전공이 ‘디지털 미디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각 학문적 특성을 살리고 있다. 디미부 소속 디지털스토리텔링 연구소는 문화체육관광부‘콘텐츠산업기술지원사업’지원 연구단으로 선정돼 3년간 30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작년 2학기에는 대학원에 뇌인지과학과, 바이오융합과학과를 신설되기도 했다. 뇌인지과학과는 신경생물학, 인지과학, 제약, 영상, 공학 학제가 결합한 학과이며 바이오융합과학과는 화학, 생명과학, 약학 등 세 학제가 결합한 학과다.

전공분야의 벽을 허문 자유전공학부를 신설, 운영하는 대학들도 있다. 자유전공학부의 입학생들은 1년간 문·이과를 넘나들며 다양한 전공의 기초과목을 듣는다. 학문 간 융합의 성격을 띠는 셈이다.

자유전공학부를 설치한 대학은 올해 3월 기준 43개로 본교,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등이 있다.      

본교는 2007년부터 자유전공학부인 스크랜튼 학부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스크랜튼대학 김헌민 학장은 “과거 학생들은 전공별, 학문분야별로 나뉜 대학 조직에서 제한적인 교류와 연구를 했었다”며 “스크랜튼대학의 학생들은 학제 간 교류와 연구를 통해 포괄적 지식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광웅 명예교수는 “자유전공학부의 학생들은 학제를 넘나들며 공부하고 동시에 자신이 만든 맞춤형 커리큘럼을 이수할 수 있다”며 “자유전공학부는 대학 교육 변화의 모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학과 장벽, 의사소통 부족…국내 학제 간 연구의 고질적 문제
정부와 대학이 학제 간 연구를 통한 새로운 연구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내 학제 간 연구 실적은 선진국에 비해 뒤쳐진 상태다.

정보통신부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각 대학과 교과부가 주도하는 융합연구는 선진국 대비 50~80%의 기술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학들의 융합 연구 실적도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9월27일 발표된 ‘중앙일보 2010 대학평가’에 따르면 융합 분야의 SCI급 논문(과학논문인용색인)은 2005년~작년 5년간 56편에 머물렀다.

국내의 학제 간 연구 실적이 부진한 원인으로, 학자들은 높은 학과장벽과 의사소통 부족을 꼽았다.

성균관대 이종관 교수(철학과)는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발행의 미래연구 계간지 <퓨처 호라이즌(Future Horison)> 여름호에서 “기초 단계에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당 이론 간 융합은 단순한 접합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김광웅 명예교수는 “학제 간 연구를 향한 연구 경향, 포럼 등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학 기구에서의 변화는 미약하다”며 “각 학과의 교수들이 자신의 고유 영역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재천 명예교수(생명과학과)는 “교수들이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 교류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그간의 많은 학제 간 연구 시도가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며 “과감히 개별 학문의 담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정의 기자 pyo-justice@ewhain.net
한주희 기자 hjh230@ewhain.net

 


<학제 간 연구란?>

학제 간 연구란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문의 큰 범주를 넘나들며 총체적인 학문 영역 간에 협동 연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학문이 날로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움직임으로 각 학문 분야의 지식 공유와 그에 따른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을 목표로 한다. 
지속적인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학문이 창출되기도 한다. 인문, 사회과학, 과학기술 부문의 학제 간 연구는 다양한 학문영역이 통합된 신(新) 학문 분야를 만든다. 이는 융합학문이라고도 불린다. 융합학문 내에는 생물물리학, 뇌과학, 진화생물학, 금융공학 등이 있다.
융합학문은 다양한 분야의 학제를 넘나들며 전통적인 학문의 경계를 없앤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 유럽 및 일본의 유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개별 학문을 총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융합전공을 제공하고 있다. 융합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은 다양한 학제를 넘나드는 상상력,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 등을 습득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한국대학도 세부 전공에 얽매이지 않는 융합학문의 교육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융합학문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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