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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자기계발서가 강조하는 성공의 법칙이 있다.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최근에도 세계적인 비즈니스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비범한 성취를 이룬 사람, 즉 아웃라이어들의 공통적인 성공 비결로 바로 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지목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두각을 나타내려면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하루에 1시간을 투자하면 장장 30년의 세월이 걸리고, 2시간 투자하면 15년이, 3시간을 투자하면 10년이, 5시간을 투자하면 6년이 걸린다.

법칙 대로라면 연구를 하는 사람은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자기 분야에서 정통하게 되어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실 직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손놀림으로 일을 처리할 때, 텔레비전 속의 생활의 달인이 눈을 감고 뒤돌아서서 면발을 뽑을 때,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느낀다.

우리가 지난 해 겨울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던 것도, 바로 이 1만 시간의 법칙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우아한 몸놀림과 당당한 미소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온 국민이 모두 마음 졸이며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았던 것은 그녀가 피눈물 흘리며 1만 시간을 보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나의 피눈물 나는 1만 시간도 언젠가는 저렇게 보상받게 되리라 희망을 얻으며, 그녀가 빙판 위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세상이 법칙대로만 움직여주면 참으로 좋으련만, 간단명료한 법칙과는 다르게 세상에서 승자를 결정짓는 것은 단지 1만 시간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주말, 유명환 장관 딸의 특채 파문에 대한 보도와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분노로 인터넷이 온통 뒤덮였다. 발빠른 트위터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유명환 장관 딸 특채에 관한 인터넷 유머가 빠르게 확산됐다. ‘오늘의 격언’이라는 제목으로, 유 장관 딸의 채용 비리를 빗댄 유머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자는 장관 딸을 이길 수 없다.”

유 장관 파문이 터진 그 시간, 본교 ECC에서는 경력개발센터 주최로 잡 콘서트가 열렸다. 각 기업이 부스를 차려놓고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한 쪽에서는 취업 메이크업 시연을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력서 사진을 찍었다. 신입사원 같은 마음으로 말끔하게 차려입고 각 기업의 홍보 부스를 찾아다니며 자신의‘스펙’을 상담하러 다니는 학생들이 행사장 안을 가득 메웠다.

학보사에서도 잡 콘서트 리뷰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후배 기자가 모든 부스를 돌며 학생들을 만나고, 상담 직원들을 만났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의 수첩에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쌓아야 할 경험치가 적혀 있었다. 토익 점수 고득점, 관련 직종 인턴십, 해외 봉사활동 경력……. 구직자들이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거쳐야 할 1만 시간만큼의 노력들이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깨알같이 새겨져있었다.

잡 콘서트 리뷰 기사를 작성하며 학생들에게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을 전달하기 위해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 우연치 않게 들은 유명환 장관의 딸 특채 파문에 마음이 헛헛했다.

나를 비롯해 1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 수밖엔 별다른 희망이 없는 취업준비생들과 이 땅의 수많은 예비 취업준비생들 앞에서, 나는 사회의 뻔한 거짓말을 믿는 바보가 아니었는가 하는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고속 엘리베이터로 상층을 향해 직행하는 사람에게 내가 열심히 타고 올라가던 사다리를 걷어차인 기분이랄까.

사회는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해 변화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안간힘으로 인해 변화한다. 안간힘 쓰며 기어 올라가던 사다리가 걷어차이면 사람들은 좌절하고 사회는 정체된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다가올 성취의 그 날을 기다리며 1만 시간을 이루기 위해 인고의 날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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