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올림피아드의 기쁨과 슬픔
철학올림피아드의 기쁨과 슬픔
  • 이지애 교수(철학과)
  • 승인 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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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육을 전공한 필자에게 2002년 제10회 국제철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Philosophy Olympiad) 참가 경험은 매우 경이로운 것이었다. 철학교육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인문학 관련 타 교과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드문, 고교생들이 참여하는 국제 규모의 올림피아드가 있다는 것과 이 대회에 참가를 위해 한국 학생들의 철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경쟁을 해야 하는 대회라는 점에서 필자가 연구하는 철학교육의 방향과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중등과정에서 ‘철학’을 정규교과로 채택하는 학교가 드문 한국의 교육 현실을 감안할 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유네스코를 통해 참가하게 되었다가 그 후 한국철학회 내 철학올림피아드 집행위원회가 창설되어, 2004년에는 IPO를 우리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2003년 <철학의 날> 행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한국어로 철학논술 및 논리적 사고력을 겨루는 중고등학생들의 철학올림피아드(KPO)가 2003년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IPO 국내 예선에서 선발된 한국 학생들이 본선에 출전하여 좋은 결과를 매년 가져오고 있다.

올해로 18회를 맞는 IPO 대회에 인솔교수로 참가한 필자는, 국내예선에서 선발한 우리 한국 대표 학생 2명이 (각국은 2명까지 참가 가능하고 주최국은 10명 참여 가능) 은상과 장려상으로 모두 수상하게 되어 매우 큰 기쁨을 얻었다.

다만, 올해의 개최국인 그리스가 공교롭게도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바람에 개최자체가 연초엔 불투명하기까지 하였지만 개최기간을 줄이고 관광일정 등을 생략하는 방향에서 다행히 개최 책임은 완수하였으나, 참가학생들에게 (서양철학과 올림픽의 탄생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였고 학생들만의 토론시간들이 없어 예년보다 친해지는 시간이 적어 아쉬웠다.

아시아 대륙에서 날아가는 대표단들에겐 장거리 비행과 시차적응의 고통까지 감안한다면, 더더욱 안타까운 점들이 많았던 대회였다. 게다가 경비절약의 이유가 아닌 대회 운영의 정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참가자들’을 중심에 놓는 대회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크게 실망했다.

토론시간이라고 했지만 학생들의 참여가 아닌, 결국은 그리스 철학교수들 간의 의견대립을 드러내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라든지, 운영의 지혜를 발휘하지 못해 심사위원들을 필요이상으로 기다리게 만든 것은, 돈보다는 생각의 부재였다.    

하지만 주최측에 대한 실망감보다 필자를 더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오히려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아시아인으로서의 내 자신이었다. 예년에도 그 슬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올해는 특히 더 그러했다.

학교 정규 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탄탄한 철학적 사유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처음에는 많이 부러워하였다. 그러다가 철학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한국 학생들이지만 철학적 사유의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잘 선발하여 약간의 지도를 하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한국의 철학교육의 밝은 신호라 여기며 기뻐하였다.

그 기쁨은 올해도 동일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의 심사에 들어갔던 IPO 창립멤버 중 한 분인 루마니아 철학교사가 대회 후에 내게 한국학생의 수상에 대한 축하인사와 함께 이런 말을 해주자, 필자 내면에 묻어 두었던 무엇이 한꺼번에 올라와 얼굴이 화끈하였다.

‘메달권 학생들의 글을 다 읽어보았을 때, 올해에도 모두 유럽권 학생들이겠거니 했는데, 한국학생이 상을 타서 놀랐다. 모두가 다 유럽중심사고의 관점에서 쓴 논의였기 때문이다. 왜 비유럽인의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글이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말은 한국학생의 글 자체가 철학적으로 잘 구성된 논의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이 대회에 비유럽 국가들의 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시아 문화권의 사유 방식도 과감하게 논의의 핵심 내용으로 드러내 주길 바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필자의 슬픔은 더 분명해졌다. 우선은 유럽권 철학자들의 사상을 주로 철학에세이의 소재로 다루면서도 한걸음 더 나아가 ‘탈 유럽적인 아시아의 사유방식’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훈련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일 필자가 그런 지도를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한국 대표학생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또한 의심스럽다. 아시아의 고교생들은 유럽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풍부한 동양철학의 유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철학을 중등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기에, 혹 다루더라도 동양사상의 단편적 지식을 암기하는 정도에 그치기에, 아시아인으로서의 ‘생각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할 겨를 없이 당장 ‘필요한’공부만 강요당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때때로 국제 대회 수상이 어쩌면 진짜 우리다움을 잃게 만드는 달콤한 ‘세계 최고’의 덫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들의 것으로 그들의 것을 눌러 이기는 방식의 싸움을 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글로벌 인재들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할 중재력을 말하고 싶다.

즉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면서 여기와 저기를 아우르는 통찰력으로 지구촌의 골 깊은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을 위해 아시아적 사유가 활용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접혀진 다른 날개를 펴 모두가 원하는 곳을 향해 함께 날아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그 길이 내게도 학생들에게도 요원하여 그 슬픔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