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도 발상이 떠오르면 달려가 노트북을 켰어요. 글이 안 풀리면 우울하다가도 발상이 떠오르면 한없이 기뻤던 한 달 반이었죠.”

 

졸업 전 자신만의 소설집 한 권을 완성해 서랍 속에 간직하겠다고 다짐했던 권혜린(국문·10년 졸)씨는 결국 그의 목표를 이뤘다. 권씨가 쓴「불가사리 전선」이 본교 출판부가 주관한 제5회‘이화글빛문학상’에서 당선된 것이다.

현재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그를 정문 앞 북 카페에서 만났다.

△「불가사리 전선」은 내 책상 서랍을 탈출한 유일한 작품 

“「불가사리 전선」은 제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인 작품이에요. 그래서 저에게는 더 의미가 크죠.”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권씨는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곧장 원고지를 찾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친구들을 주인공 삼아 동화를 썼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를 썼다. 그 때 쓴 시만 해도 스무 편이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소설「불가사리 전선」의 출품 역시 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내놓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몇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결국 그는 마감 하루 전 작품을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왠지 이번 작품은 한 번쯤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제 작품을 누군가에게 처음 보여준다는 것이 이렇게 책 출판으로 실현되다니 가슴이 벅차요.”
이번에 출품한 김씨의「불가사리 전선」은 올 9월 초에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인간간의 접촉이 사라져가는 무선(無線)시대 속의 희망, 유선(有線)

이번 소설 「불가사리 전선」을 통해 권씨는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이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 따뜻한 유대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소설 속에서 취업준비생인‘나’와 갑작스런 안면장애를 겪게 된 기상 캐스터는 불가사리 섬에서 폐기된 전선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유선이 사라지고 무선이 성행하는 사회에서 떨어져 유선의 잔재들을 처리하는 두 여자는 이 섬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로 떨어져 있는 개인들 간 소통의 부재를 다시 연결하고자 노력한다.

이 소설의 핵심인‘소통과 연대’라는 코드는 권씨의 경험이 집약된 것이다. 그는“농촌, 해외봉사 등의 외부활동을 하며 개인들이 모여 공통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대하는 것을 목격했다”며“많은 이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느꼈던 따뜻함을 소설 속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글 속에서‘나’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택한 방안은‘라디오’다. 권씨는 김준혁의 소설「펭귄 뉴스」에서 발상의 실마리를 얻었다.「펭귄 뉴스」에서 라디오 DJ인 메이비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방송을 한다.“시각을 생동감 있는 사물에 대한 묘사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난 후 라디오 매체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된 것 같아요.” 

△글쓰기, 생각의 파편들 짜 맞추는 과정 힘들어 

 

 

심사원들은 권씨의 작품에 대해“작품의 구성요소들이 은유적으로 맞춤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작품 속의 구직난을 겪고있는 청년들을 대변하는‘내년기(來年期:대학을 졸업하기 전의 청년들이 취업이나 졸업을 내년으로 미루면서 방황하는 시기)’, 사람들간의 소통이 단절됨을 의미하는‘안면마비증상’등의 요소들은 실제로 오늘날의 현실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런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수첩에 차곡차곡 모아두기는 했지만 이들을 조합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수를 바꿔보기도 하고, 스토리도 조금씩 바꿔보면서 요소 간의 연관성을 높이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을 쓰며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높이지 않으면 제 작품 역시 높아질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를 좀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권씨는 임용고시 준비 중이다. 그는“국어선생님을 하면서 틈틈이 사회과학, 인문학, 사학 서적을 읽으며 지식을 넓힘으로써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 속의‘나’는 남들이 정해준 타의적인 삶을 살아오다가 불가사리 섬에 떨어진 이후 주체적인 의지로 모든 것을 해나간다. 권씨는 이러한‘나’가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말한다.“대학교에 들어온 후부터는 부모님이 정해주는 길이 아닌 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싶었어요.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서도 이번 소설을 쓴 것 역시 이런 제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빛문학상 당선을 시발점으로 앞으로도 그의 서랍 속을 탈출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을 자주 보게 되길 기대해본다.
                 
최은진 기자 perfectoe1@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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