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사회학과 관련되어 흔히 듣던 농담이 있다.
좋은 경제학자는 죽어서 물리학자로 다시 태어나지만, 나쁜 경제학자는 다음 생에서 사회학자가 된다는 것이다.

언뜻 사회학의 사회”과학”적 엄밀성을 폄훼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농담을 나의 지도교수는 다음과 같이 새롭게 해석해 주곤 했다.

“근데 말이지, 이건 사회학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학문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해. ‘나쁘게’ 보낸 일생을 다음 생에서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만큼, 그리고 그런 만큼 보람도 큰”.

그런 사회학을 이화에서 함께하게 된 것에 나는 깊이 감사한다.
특정 학과의 역사는 그 학문의 역사와 그 학과가 속한 대학의 역사를 모두 배태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19세기 말, 봉건적인 틀에 갇혀 배움의 기회가 전혀 허락되지 않았던 한 어린 소녀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것으로 긴 여정을 시작한 이화의 역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화는 그 이후로 소외받던 여성을 위험과 어려움에 맞서는 대담한 용기와 함께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 서게 하였고, 이들을 약자를 배려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인재들로 키워 왔다.

고전 사회학도 19세기 말 이후 근대성의 확장이 불러온 유럽 시민사회의 혼란 속에서 급격히 성장하였다.

이러한 혼돈과 파괴의 파편 속에서도 역사적 진보의 약속을 구현하려 노력한 사회학은 20세기 중반 타 사회과학분야와 구분되는 독창적인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 정체성의 핵심은 과학적 방법론과 도덕적 실천의 위험한 경계 사이에 존재한다. 아카데미에서의 영역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양한 입장에 대해 사회학은 놀라운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학문적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강조가 정점에 이른 때에도 실천적 이슈로 고민하는 사회학자가 소외된 적은 없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사회학자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가 영역상의 다양성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한다.

이화가 사회학 교육을 시작한 1958년 역시 한국으로서는 근대성이 태동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독립과 한국전쟁이라는 격심한 사회변동 직후에도, 급격한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열망이 날카롭게 대립하던 시기에도 이화여대의 사회학과는 묵묵히 그 풍요로운 그늘 아래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어 학문과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주저함 없이 길을 떠난 수많은 동문을 배출하였다.

지난 3월 초 개강모임에서 이미 사회학을 전공하거나 전공하고자 선택한, 그리고 관심은 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많은 질문들을 들었다.

“전공후 취업전망은?”“분야가 너무 광범위하여 사회학이 어떤 학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답들을 어렵게 생각해보다가 그 대신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을 배운다는 것은 마치 흐릿한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또렷해지는, 모든 행위와 사건과 구조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혹은 깨닫고자 열망하는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4년은 개인의 일생에 있어 돈이아니라 지식 그 자체만을 위해 열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이화의 사회학과에서 내가 배운 지식은 그 이후 배운 것들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는 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이 학문의 정수를 영원히 남겨주었다.

어느 졸업생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당당히 할 수 있게 해 주는 사고의 뿌리”로서 말이다.
어려운 시기, 용감하고 현명한 선택을 한, 그리고 곧 하게 될 모든 사회학과 신입생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마음에 두고 있는 다른 전공분야가 있으면서도 사회학을 진지하게 고민해 준 친구들에게도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직 여백이 남아 한 두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사회학과, 다양한 분야에 많이 진출하며 취업준비도 열심히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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