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를 며칠에 볼까요?” 교수님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러를 펼쳐 들었다.
약간의 침묵 후, 한 학생이 용기 있게 날짜를 제시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의 반발로 그 의견은 무시되었다.

두 번째 학생은 본인에게 편리한 새로운 날짜를 다시 제안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의 반대로 그 의견 역시 없던 것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시험 날짜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고 논쟁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두 눈을 책상 위 스케줄러에 고정시킨 채로 ‘그 날은 제가 안돼요.’라는 말만을 반복하던 우리들에게, 교수님께서는 모두 잠시 고개를 들어보라고 하셨다.

“제가 여러분에게 왜 물어봤을까요? 제가 날짜를 정해서 통보하면 이 논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여러분 스스로 중간고사 날짜를 정하도록 했을까요?”

우리는 알겠다는 표정 반, 모르겠다는 표정 반을 지으며 교수님의 말씀에 집중했다.
우리는 하루 중 거의 모든 시간을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하며 지낸다.
우리 머릿속 거의 모든 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를 언제 만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그 모든 생각을 항상‘나’중심으로 계획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다소 자기중심적으로 보일지라도 우리는 종종 이해 받아왔다.

이십대니까. 해결해야 할 인생의 과제가 유난히도 많은 이십대니까.
이십대의 우리는 앞으로 어떤 직업에 종사할 지 결정해야 하며,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평생 곁에 있어 줄 친구도 사귀어야 한다.

십년이라는 기간 안에 인생의 반듯한 초석을 다져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며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그래서 일까. 어느 누구도 자기중심적인 행동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본인의 의견을 끝까지 고수하여 원하는 날짜에 중간고사를 보게 된다면, 그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멀리 뛰기 선수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더 멀리 뛰기 위해 출발선보다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도약을 한다. 멀리 뛰기 선수들은 조금 물러서서 도약할 때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멀리뛰기 선수들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한 발짝 물러나 전체의 방향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유학을 세운 공자는 인(仁)을 인간관계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는 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말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를 타인에 대한 호의적인 배려라고 해석하고 있다.

2010년, 스스로에 대한 강렬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천년 전 공자가 말한 이‘배려심’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예민하게 살피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낚시 미끼로 초콜릿을 사용한다고 해서 물고기가 잡히겠는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물고기가 좋아하는 지렁이를 꿰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의 중심은 사람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그가 바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방법뿐이다.

훗날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을 준비하는 우리. 그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리더십 특강을 좇아 듣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저 상대의 호감을 얻으려는 배려가 아닌 참된 배려 일 때, 그 진심은 상대에게 진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새 학기, 나의 스케줄러가 새로운 계획으로 가득 차 있듯 친구의 그것 또한 당찬 계획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리더의 자질은 친구의 일정을 고려해 주는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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