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은 지난해는 생물학계는 물론 전 세계 과학계가 온통 축제 무드로 가득 찬 한해를 보냈다. 다윈의 축제를 통해 생물진화론이 학문의 경계를 넘어 종교, 인문학 사회학과의 학문 융합과 통섭(統攝)의 필요성이 재조명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윈을 생물학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생물학자이기 전에 지질학자였다. 그는 지질학자 다윈에서 생물학자 다윈으로 변신한 복수전공자이자 학문융합과 통섭의 선구자였다. 다윈 역사를 재조명해본다.  


중세는 기독교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지질학의 대가 제임스 허튼은「지구에 관한 이론」에서 동일과정설을 제창하였다. 이 학설의 주요 내용은 현재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지질학적 자연현상은 과거 지질시대에도 일어났다는 진화론적 사상이다. 기독교사상이 지배적이던 중세사회에 진화론적 개념의 발표는 목숨을 건 대단한 용기를 요구한다.

다윈의 지우(知遇)인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에 의해 지구에 관한 이론의 해설서격인「지질학원리」가 출판되면서 진화론적 사상과 개념이 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시기 중세 유럽사회에는 동일과정설과 상반되는 격변설이 유행했다. 격변설은 신의 힘을 빌려 생물의 창조를 주창하였다. 또 격변설에 바탕을 둔 학설로 지구상의 모든 암석은 물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는 암석수성론과 모든 암석은 불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진화론을 바탕에 둔 암석화성론이 팽배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창조론적 기독교 사상이 지배하던 중세의 역사적 배경 하에서 다윈 진화론의 탄생은 물과 불의 전쟁과 같았다.


찰스 다윈은 에딘버러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중퇴하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재학 시 박물학을 가장 열심히 공부해 후에 박물학의 기초를 수립하였다. 1831년 12월부터 5년간 박물학자로 비글호를 타고 브라질, 페루, 오스트랄리아, 태평양의 여러 섬을 탐사하였다. 탐사 여행을 통하여 산호초의 구조, 화산섬과 남미 지질의 분포, 화성암의 다양성 등을 연구하고 화산섬과 남아메리카의 지질학이라는 저서를 출판 하였다.

 

다윈의 스승인 캠브리지 대학 식물학 전공 헨슬러 교수도 다윈을 지질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항해 직후에 주로 연구하고 종사한 과학이 지질학이였다. 다윈은 지질학이 생물 진화론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항해 도중 배위에서 지질학자 라이엘이 쓴「지질학원리」에 심취되어 지층이 변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생물 진화의 힌트를 얻었다.

 

 다윈은 지질학의 혁명가 라이엘이 가르쳐 준대로 자연을 보았다. 그는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는 중에 갈라파고스군도에서 진기한 새의 변이를 보고 생물은 진화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856년생물의 종은 자연선택에 의해 변화해 진화 한다는 창의적인 놀라운 구상이「종의 기원」이라는 명저를 탄생시켰다. 이 책의 출판은 기독교계와 학계에 격렬한 공격을 받았다. 성경 창세기의 천지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였다는 기독교 사상에 정면으로 위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후 진화론이 학계에서 공인돼 다윈은 1877년 캠브리지 대학과 세계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영예를 안았다.


다윈의 삶과 생물진화론에서 보면 학문의 융합은 이미 중세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글로벌자본주의시대인 우리 사회는 인문학자들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인성을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과학을 비판하고 과학은 종교를 불신하고 있다. 종교-과학-인문학의 고리를 연결하는 지식의 대통합의 필요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학문의 융합과 통섭은 이미 19세기 영국의 휴얼도 소개한 바 있다. 일본 도쿄대학 고미야마히로시 전총장의 저서「지식의 구조화」내용과도 상통하고 있다.

 

추리소설이나 인기 그룹 이름에 f(x), 2NE1등 수학이 등장하는 재미난 현상이 우리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반도체 칩을 이용한 인슐린펌프와 DNA분석기에 첨단과학과 의학이 접목되고 있다. 수학과 대중문학이 만나고 의학과 과학, 과학과 철학, 종교와 예술, 이공학과 예술 등의 학문 융합과 통섭이 진화의 선상에서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종교와 과학-인문사회학이 높은 학문의 벽을 넘어 모든 학문 간에 담이 허물어진 융합된 학문의 사회에 살아야 함이 다윈 탄생 200주년 다윈축제가 남겨준 귀중한 선물이자 역사적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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