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취업, 그 불안한 균형에 관한 소고
대학과 취업, 그 불안한 균형에 관한 소고
  • 이주희 교수
  • 승인 2009.0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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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C 교보문고의 매장 레이아웃과 디스플레이를 주의 깊게 살펴 본 적이 있는가? 고객의 발길이 가장 잦은 입구에는 손쉽게 구매가 가능한 인기상품을 진열하는 것이 원칙이겠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성공·처세 서적이 가장 먼저 뻔뻔스럽게 누워 이화인을 맞는다. 이에 혹시나 뒤처질까 두려운 듯 바짝 붙어 있는 경제·경영 서적의 산을 넘어보아도 역시 이들 서적이 독차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섹션의 중심부와 마주칠 뿐이다. 

『대한민국 20대, 스펙을 높여라: 취업승리를 위한 인턴십의 모든 것』, 그래, 취업에 승리하기위해 스펙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인턴십도 잘 찾으면 간혹 좋은 것도 있을 거야, 하고 고개를 돌리자 『20대, 공부에 미쳐라』를 만나게 되었다. 오, 이건 좀 괜찮은 걸, 하고 지나가려 했으나 『부와 성공에 직결되는 공부법』이란 부제까지 보게 되어 왜 나는 부와 성공에 직결되는 않는 공부만 했을까 하는 찜찜한 기분만 뒤따르게 되었다.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은 심지어 한 번 들춰보고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다. 나도 이화가 안 붙잡는 교수가 되면 곤란하므로. 

대학서점의 입구가 성공과 처세로 도배되는 세태를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으니 오해하지 말기를. 오히려 취업현실의 긴박함과 그로 인한 이화인의 절절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성공과 처세의 바다에 초록빛 섬으로 홀로 외로이 뜬 채 “네가 노력을 안 해서 취직을 못하는 것이라...청년 백수들에게 카운슬링을 가장한 모욕을 퍼붓”는 이웃 자기계발서적들을 비판하는 『88만원세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 반갑기는 했으나, 그 어두운 전망과 세기적 노력이 필요한 경제시스템 전환방식에 대해 여기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 우리의 청년실업률은 상당수의 -특히 여성- 타의적 구직포기자로 인해 그렇게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다. 서구 선진국 중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한 국가는 거의 없으며, 설사 있다 해도 우리와는 고용 및 복지체제가 너무 달라 유사한 해결책 마련을 감히 꿈꾸기 어렵다. 구직자의 “눈높이”때문이라는 비난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눈을 낮춰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에 저임금이기 십상이다. “창출”하겠다는 극소수의 일자리 역시 고용이 불안하고 근로조건이 나쁜 사회서비스직이다. 이런 일자리는 자본집약적 제조업에서 가능한 합리화(rationalization)와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데드-엔드 잡(dead-end jobs)이 되기 쉽다.

바로 이처럼 취업이 절실하고 급박하기 때문에, 나는 이화인의 대학생활이 학문의 향유와 지식의 교류로 가득 찬 천국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대학 밖에는 정말 딴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여성의 자존심과 도전의식을 꺾는 수많은 장벽 속에서 아마도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을 것이기 때문에. 그 때마다 당신을 계속해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 힘은 딴 세상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충만한 자신감으로 자신을 채울 수 있었던 대학생활이 될 것이므로. 때로는 현실에 맞추어 그에 대비하는 것보다, 그 현실마저도 바꾸어낼 수 있는 조용하면서도 깊은 성찰과 정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아는 것은 힘이지만, 간혹 섣부른 포기와 타협으로 이끌기도 하니까.

스펙이 중요한가? 최선을 다 해 관리하되 그의 노예가 되지는 말기를. 목표가 소중한가? 온 힘을 다 해 추구하되 그가 당신을 지배토록 내버려두지는 말기를. 성공을 열망하는가? 유리천장을 깨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탐험하되 진정한 성공은 나의 힘으로 남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나눔이라는 것을 언제까지도 잊지 말기를. 현실을 잘 알면서도 이런 무리한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나를 용서하기를, 선생이란 원래 그런 자들이니까. 그러는 가운데 한국사회를 사는 20대 여성으로서의 삶의 구조적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발견하기를, 그리고 새로운 차원의 자유를 얻어 비상하는 흥분을 만끽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번 학기 두서없는 글들을 모두 마친다. 

이주희 교수(사회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