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2분 혹은 11분.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 어머니 보다는 친구.
“오늘 친구랑 영화 봤어요.” “오늘 날씨가 어떻대요?” “다녀오겠습니다.” 
하루 동안 당신이 가족과 나눈 대화시간, 대화상대, 대화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족 간 대화의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현실에서의 실천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나 ‘대화’가 우울증, 자살 등 사회문제 해결의 ‘즉효약’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서울시민 중 27만여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인류를 괴롭힐 주요 질병으로 우울증을 꼽으면서 2020년에는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에 오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울증이 기타 정신질환과 달리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이유는 심할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최대 10%가 자살한다는 통계와 자살자의 70%가 우울증 등의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올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20, 30대의 자살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문제다. 한 국회의원이 ‘2004~2008년 자살자 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30세 이하 자살자 비율과 자살자 수는 매년 증가추세다. 국가의 핵심 성장 동력이라 할 수 있는 2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나타나면서 자살 예방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자살의 주요원인인 우울증에 대해서도 개인의 정신질환차원 넘어 사회적 관점에서 다양한 치료프로그램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동시에 전문가들은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꼽는다. 지난달 강원도에서는 동반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홍천경찰서 신익철 형사계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동반 자살을 시도한 다수가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가족들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가족들의 관심과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족들의 관심과 대화는 우울증과 자살 예방의 지름길이 될 수도, 혹은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전북여성긴급전화 함미화 대표는 “심한 갈등으로 표출되는 가족문제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화 부족’이 시발점인 경우가 많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대학생들이 가족과 나누는 대화시간과 깊이 있는 내용을 공유할 기회는 매우 적다. 그야말로 ‘양’과 ‘질’이 모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실제로 대학생들이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 평균 채 한 시간이 안 된다고 한다. 2008년 1월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albamon.com)이 대학생 1012명을 대상으로 ‘대학생의 가족 간 대화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은 가족과 하루 평균 42분 대화했다. 또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대학생의 경우는 하루 평균 대화시간이 11분에 불과했다. 부모님과 주로 하는 대화로는 오늘 있었던 일(48%)이 주를 이뤘고 별 뜻 없는 안부(14%), 학교생활(13%), 진로(9%) 등이 있었다.

대학생들이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적은 이유 중 하나는 대화상대로 부모님보다 친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위 포털에서 올해 1월 대학생 1천1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5.4
%가 평소 주요 대화상대로 친구를 꼽았다.
그러나 동시에 설문대상자 20.1%가 ‘고민을 함께 나눌 상대가 딱히 없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는 친구와 고민 상담을 해도 심리적 안정을 얻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와 이야기해도 풀리지 않을 만큼 힘들다면, 가족에게 털어놓아보자. 하루아침에 대화시간을 늘리거나 대화내용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다가올 어버이날 선물이 고민된다면 백화점표 비싼 선물대신 아버지, 어머니와 마주 앉아 나누는 한 시간의 대화를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은지 사회·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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