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업 교수의 어원인문학 교실

요즈음 ‘마르쉐’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음식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말이 음식점이지 음식시장, 우리말로 하자면 먹거리 시장에 가깝다. 들어갈 때 나누어주는 계산서를 가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시켜 먹고 나올 때 한꺼번에 계산하면 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이 이색적인 음식점은 재래식 시장의 분위기와 현대식 뷔페(buffet)를 결합한 ‘퓨전(fusion)’ 식당인 셈이다.

그렇다면 마르쉐(marche)의 어원은 무엇일까? 마르쉐는 11세기에 라틴어 메르카투스(mercatus, 상업, 시장)에서 생긴 말이다. 처음에는 ‘상품의 매매’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차츰 ‘상품을 파는 장소’라는 의미로 어의가 확장된 말이다.

이 마르쉐는 마가젱(magasin, 상점)이나 쒸뻬르마르쉐(supermarche, 백화점) 등이 생기면서 과거의 활기는 많이 잃었으나 아직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빠리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침 일찍 비교적 넓은 광장을 빌려 산지에서 바로 올라온 신선한 야채, 과일, 꽃, 생선 등을 판다. 또한 마르쉐는 고서적, 골동품 등 시대가 지나 희귀해진 물건들을 파는 장소로도 쓰인다. ‘마르쉐 오 퓌스’라고 불리는 빠리의 벼룩시장처럼 연중 열리는 상설시장도 있지만, 한 달에 한두 번 날을 정해 돌아다니는 이동시장도 있다. 이 이동시장에서는 잘만 고르면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을 헐값에 살 수 있는데, 여기를 찾는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검소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단어가 ‘가든’과 같은 길을 갈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든’하면 ‘정원’보다는 ‘고깃집’을 떠올리듯이, ‘마르쉐’ 역시 프랑스에서처럼 ‘일반 시장’을 지칭하기보다는 ‘음식점’처럼 굳어질 가능성이 많다.

장한업 교수(불어불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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