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업 교수의 어원인문학 교실

학생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레쥬메가 있다. 무슨 의미냐고 물어 보면 ‘이력서’라고 대답한다. 지금은 이해하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좀 혼란스러웠다. 형태상으로는 낯익은 프랑스어인데 의미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레수메레(resumerer·다시 잡다, 다시 시작하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레수메레는 14세기 중엽에 헤쥐메(resumer)가 되었고, 헤쥐메(resume)는 18세기 중엽 이 헤쥐메(resumer)의 과거분사로 생긴 말이다. 뭔가를 ‘다시 잡다’라는 말은 그것을 ‘요약하다’라는 말이 되는데, 오늘날 불어에서 헤쥐메(resumer)는 이 ‘요약하다’라는 의미로만 쓰인다. 헤쥐메(resume) 역시 형용사로는 ‘요약된’, 명사로는 ‘요약’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단어는 18세기 말 영어에 들어갔고, 1940년대부터는 ‘이력서’라는 의미로도 사용하였는데,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 단어를 ‘이력서’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를 그런 의미로 쓰지 않는다.

레쥬메와 관련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잠시 귀국한 한국 여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번역 전문 회사를 찾았다. 이 학생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자 듣고 있던 직원이 “모레까지 레쥬메를 써 오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여학생은 당황하면서 “뭘 헤쥐메하라는 거죠? 뭐라도 주시고 헤쥐메를 써 오라고 하셔야죠”라고 응답했다. 직원은 답답하다는 듯이 “이력서 말이에요. 에이 참, 외국에서 공부하셨다는 분이 그것도 몰라요?”라고 핀잔을 주었다. 여학생은 그제야 ‘레쥬메’가 ‘이력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장한업 교수(불어불문학 전공) hujang@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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