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더러운 빨랫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상적인 내레이션을 남긴 미국 ABC 드라마 <Desperate Housewives>(위기의 주부들)는 중산층 동네의 숨겨진 불화와 사랑을 그렸다. 비극으로 치달아가는 각 가정들의 이야기는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 ‘메리 앨리스 영’ 부인이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드라마는 꼭꼭 숨겨뒀던 마을 사람들의 비밀을 코믹하게, 때로는 심오하게 풀어나간다.

이 드라마 속 가족들처럼, 세상 어디에나 비밀은 있다. 비밀은 무지와 달리 알지만 모르는 척, 있지만 없는 듯 시치미 떼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자는 매일 비밀과 싸워야 한다.

1970년대 초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슈타인의 활약으로 ‘워싱턴포스트’에 게재된 워터게이트 사건, 2006년 4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불법도청 폭로 기사. 이러한 보도 이면에는 분명 비밀을 파헤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싸움이 있었을 것이다.

학보사 기자로서 취재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가끔은 전부 입을 닫아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취재원이 유력 일간지 기자에게 나서서 제공했던 정보를, 학보사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때는 꽤 섭섭하다. 다른 대학의 기관들이 학보사 기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수치들을 우리 학교 기관이 감출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든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거나, 입장이 난처하다는 이유로 보도를 유예하는 취재원도 있다.

주간지 ‘한겨레21’ 2월27일자(금)에는 우리 학교를 포함해 전국 25개 로스쿨의 출신 대학과 전공, 주소지 분포, 등록금·장학금 내역, 나이 분포에 관련된 기사가 게재됐다. 이번 호 ‘본교 로스쿨 입학생 자교 출신 49%’기사의 기자는 본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생 정보 통계에 대해 알려달라고 우리 학교 담당 기관에 요구했다. 취재원은 “로스쿨 입학생들의 출신 대학만 알고 있으며 이 정보만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한겨레21 기자에게 정보를 어디서 얻었느냐고 묻자 해당 기관을 거론하며 “이화여대 로스쿨에 대한 자료인데 이화여대가 아니면 어디서 받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기사는 한겨레21 측으로부터 ‘우리 학교’ 로스쿨 신입생에 대한 자료를 ‘전달’ 받아 쓰게됐다.

담당 기관이 자료 제공을 거부해, 다른 통로를 통해 자료를 전달 받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이해할 만도 하다. 학보사는 주요 취재원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고발성 기사를 게재한 일도 비일비재했고,  필자를 비롯한 기자들의  실수로 학보사에 대한 신뢰를 깨트린 적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학보의 오류도 세 건이나 됐다.

그러나 학보사 기자들은 신뢰관계를 떠나 취재원의 과도한 비밀주의에 접하면 기로에 선다. 마감이 지나도록 끈질기게 요청할 것인가,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아직 논의 중”이라는 답만을 얻었다고 그대로 적을 것인가. 취재원이 특정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요구를 거부한다면 더 날카롭고 질 높은 기사를 보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학보의 특성 상, 보도유예 요청이나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비보도요청)를 무시한 채, 비밀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다음 주’가 곤란해진다.  다음 주든, 그 다음 주이든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젠가는 그 취재원의 취재가 또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취재원은 전적이 있는 학보사 기자에게 “신뢰할 수 없다”며 취재에 응해주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학보사는 지금껏 더 많은 이화인의 행복을 기준삼아,  끈질기게 요구하고, 보도하자는 주의였다.

세상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어떤 곳에든 비밀은 있지만 과도한 비밀주의는 거짓이나 마찬가지다. 가슴에 칼을 숨기고 미소 짓는 위선이다.

우리는 누구나 더러운 빨랫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대학보를 접하는 이화인들은 “아직 논의 중”이라거나 “모른다”는 수많은 멘트들이 비밀을 감추는 핑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때로는 “현재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다” 혹은 “사실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와 다르다”는 솔직한 멘트가 더 진실로 다가오는 법이다.

이채현 편집부국장 cat0125@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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