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업 교수의 <어원인문학 교실>

요즘은 좀 덜 쓰지만 여성 의류와 관련된 단어로 란제리가 있다. 사전에 찾아보면 ‘여성의 속옷’이라고 나온다. 흔히 ‘란제리’라고 하는데, 정확한 원음 발음은 ‘렝주리’다. 그렇다면 왜 ‘렝’이 ‘란’이 되었을까? 음성학적으로 보았을 때, 불어의 모음 ‘엥’은 ‘앙’과 비슷하므로 ‘렝’이 ‘랑’으로 들릴 가능성이 많고, ‘랑’에서 콧소리, 즉 비음(鼻音)을 좀 약화시키면 ‘란’으로 들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 리네우스(의미: 아마로 만든)가 12세기 고대 불어 링인저(linge)가 되었고, 이 형용사에서 15세기에 렝주리(lingerie, 아마로 만든 제품)라는 명사가 파생되었다. 렝주리는 원래 아마로 만든 가정용품, 예를 들어 앞치마, 홑이불, 시트 등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 좀 더 좁혀 팬츠, 파자마, 슈미즈 등과 같은 내의류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한국에서 렝주리는 앞서 말한 대로 주로 여성의 속옷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이 단어를 매우 좁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가 여성의 속옷으로 쓰인 것은 아마의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이라고 한다. 한해살이 풀인 아마는 매우 부드러운 소재다.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재질이 개발되어 꼭 아마로 만들지 않더라도 종래의 명칭인 란제리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재미있는 언어 현상이다.

의상용어로 ‘렝주리 룩(Lingerie look)’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속옷에서 착안한 옷차림으로 매우 얇은 소재를 사용하여 피부가 약간 드러나게 노출시키는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섹스 심벌 마돈나에 의해서 크게 유행했다.

장한업 교수(불어불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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