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열린 베이징올림픽대회 개막식행사는 중국의 문화적 힘을 세계적으로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잘 알려진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謨)가 총감독을 맡아 진행한 이번 개막식행사는 그 어느 올림픽대회 때보다 문화에 초점을 맞춘 거대한 공연장이었다. 장이머우 감독은 그 특유의 웅장한 스케일로 중국의 문화적 저력을 연출해냄으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융합된 중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중국인들이 올림픽대회를 기회로 자신들의 문화적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정당한 권리이다. 그런데 문화적 힘의 현시 이면에 은연중에 스며들어 있는 또 다른 일면을 읽을 수 있다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몇 해 전 장이머우 감독은 영화「영웅」을 통해 천하통일의 명분을 강조함으로써 ‘천하’관념을 부각시키고 중국인들의 잠재된 욕망을 자극한 바 있다. 「영웅」은 장이머우의 초기 영화, 예컨대「붉은 수수밭」,「홍등」,「국두」,「인생」등과 비교할 때 예술성뿐만 아니라 함축하는 의미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아마 이 영화의 제작에 힘입어 장이머우는 올림픽대회 개막식행사의 총감독을 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그는 이번 올림픽대회 개막식행사를 통해 중국의 문화적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문제는 그것이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천하’관념의 내면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1920년대 초 베이징대학 교수 량수밍(梁漱溟)은 그의 유명한 저서『동서문화와 그 철학(東西文化及其哲學)』에서 중국문화가 변신하여 세계문화가 되어야 할 필연성을 논증하고자 애썼다. 중국문화는 “당연히 중국에 사용하는 것만으로 그칠 수 없고 세계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량수밍의 주장은 이상주의적 관념이 뚜렷하였지만 이론적 깊이를 갖추어 설명됨으로써 당시 중국인들의 잠재된 욕망을 활성화시키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또 1940년대에 쓴『중국문화요의(中國文化要義)』라는 책에서 ‘천하’관념을 중국의 특수성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중국인들에게 ‘문화관념’과 ‘천하관념’은 표리관계에 놓여 있는데,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이들 관념은 문화심리구조를 형성하여 좀처럼 동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최근 들어 중국인들이 문화적 힘을 강조하며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것은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잠재된 욕망의 ‘천하관념’과 연결되어 문화패권주의로 흐른다면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크게 주목되었던 중국인들의 혐한(嫌韓)·반한(反韓)의 감정은 일차적으로 한중 간 민간차원의 상호이해의 부족으로 야기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중국인들의 잠재된 욕망이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 속에 잠재된 욕망을 읽어내고 그에 대한 비판과 해체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근대이후 중국인들도 자신들의 편견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고대철학사』를 쓴 후스(胡適)도 그렇거니와 중국의 근대 사학(史學)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꾸지강(顧?剛)도 두드러진다. 꾸지강은 1920∼30년대에『고사변(古史辨)』의 저술을 통해 중국 고유의 편견을 학문적으로 비판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중국 ‘민족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했다는 관념’, 지역은 ‘지속적으로 통일을 지향한다는 관념’, ‘고대 역사 속의 신화를 인간화하는 관념’ 등을 타파하고자 애썼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노력은 중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문화적 전망을 가져다주는데, 오늘날 다시금 경청할 만하다. 최근 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신화전설의 시대를 역사화 하려는 ‘단대공정(斷代工程)’이나 주변민족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통합·기술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등도 중국인들의 잠재된 욕망과 무관하지 않은데, 꾸지강의 학문적 노력은 이들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으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은 언제나 그쪽 내부에서 꿈틀거리게 마련이다. 그것을 경계하고 해체하려는 노력은 이쪽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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