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테인을 아십니까?
뷰테인을 아십니까?
  • 송영빈 교수(일본언어문화 연계전공)
  • 승인 2008.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귀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자주 듣게 된다. 예를 들면, “미국과 통화 스와프 체결”에서 “스와프”같은 말이다. 나만 이상하게 느끼나 싶어 검색을 했더니 무슨 뜻인지 알려달라는 수 백 개의 질문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다. “맞바꿈”이라 하면 될 것을 말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존경하는 분의 농담 섞인 비유처럼, 요즘은 땅속에는 메트로가 땅위엔 케이티엑스가, 거리에는 Hi, Seoul 택시가, 하늘에는 칼이 날라 다니는 세상이다.

물론, 우리말에 없는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외국어로 들어와도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우리말의 일부(외래어)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다만, ‘맞바꿈’이라고 하는 적절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와프’를 쓰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영어를 공부하다보면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cabin’이란 단어의 경우 ‘오두막집’·‘선실’·‘객실’·‘조종실’처럼 여러 의미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영어는 한 개의 형태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계속 부가하며 연상 가능한 범위에서 다의어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한편 우리말은 한자라는 단어문자를 사용했기에 영어와는 달리 새로운 개념에 대해 각기 다른 말을 활발히 만들었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어와 같은 방식이 좋은지, 우리와 같은 방식이 좋은지에 대해 이제는 객관적으로 득과 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한국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고, 시간 또한 많이 걸리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깊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스와프’와 같은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의 생명력을 잃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스와프’에 대해 우리말 ‘맞바꿈’을 쓰자고 주장을 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해 ‘맞바꿈’은 학술적인 용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스와프’가 의미하는 뜻을 ‘맞바꿈’은 나타내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의 의식에는 학술용어는 한자어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의 경우는 ‘맞바꿈’이라는 고유어가 너무 일상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술용어는 과연 한자어이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답하자면, 현재의 학술용어들을 보면 대부분이 한자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한자어라도 소리로 들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언어가 그렇듯이 학술용어도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말 범주에는 넣기 곤란한 학술용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또한 우리말에 이미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 될 것을 난해한 한자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이 아파서 결석한 후 출석을 인정받기 위해 갖고 오는 진단서를 보면 첫 마디부터가 놀랍다. “상기 여환은”으로부터 시작하여 “슬관절이 어쩌고 저쩌고…” 무슨 병에 걸려 결석을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여환’을 ‘여자 환자’, ‘슬관절’을 ‘무릎관절’이라고 하면 뜻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학술용어에도 우리말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유어의 사용 범위를 학술분야에까지 넓혀 우리말의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마치 아까 예로 든 ‘cabin’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다시 ‘스와프’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느 학생에게 물으니까 자신은 ‘스왑’으로 배웠다고 한다. 우리가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사용하는 가스를 ‘부탄가스’라고 하는데, 이를 화학 쪽에서는 ‘뷰테인가스’로 부르고 있다. ‘게르마늄’은 ‘저마늄’, ‘망간’은 ‘망가니즈’로 하고 앞으로는 중등교육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고 한다.

미국이 학문의 중심이기 때문에 미국 발음을 따라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이다. 답답한 일이다. 이런 일은 외래어와 외국어를 혼동하고 있는데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용어의 공공성, 공익성을 더 우선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자연현상과는 달리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노력에 의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생명력 넘치는 우리말을 가꾸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