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끝자락에 자리한 우리 국토의 막내 ‘독도’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한국인을 긴장시켜 왔다.

1950년 6.25 동란시 독도는 행정권이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우리 어민들의 위령비를 뽑아내고, 근해에 출어중인 우리 어부들의 어로작업을 막기까지 이르렀다. 이때 33인 청년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현재 16명만이 생존한 ‘독도의용수비대’가 그들이다. 이들 중 당시 제2전대장을 맡았던 정원도 씨를 지난 10월7일(화) 울릉도 구민회관에서 만났다.

“배를 타는 순간까지 거기서 뭘 어떻게 지키겠냐는 비웃음을 들었죠.” 그러나 홍순철 대장과 32명의 청년들은 끝까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독도에 간 수비대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미역을 채취해 팔거나 뭍으로 나가 일반 가정집에서 김치, 된장 등을 구해 끓여 먹으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1953년 4월20일 외로운 독도 지킴이를 자청한 33인의 의용수비대는 그렇게 독도에서 4년을 보냈다.

정 씨는 4년간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단 한차례 있었던 일본과의 전투를 꼽았다.

그는 “일본인들이 독도 쪽으로 다가와 수비대가 기관총으로 위협을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시간 후에 일본 방송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당시 독도 의용수비대가 가진 무기는 7개의 기관총과 파격포가 전부였다.

1956년 12월30일, 6.25동란이 휴전되고, 정국도 안정될 무렵 의용수비대는 국립경찰에 수비임무와 장비일체를 인계하고 생업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를 포함한 8명의 의용수비대는 경찰로 특채 모집돼 그 후로도 1년 5개월 가량 독도를 지켰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예요.” 한 때는 무관심한 정부와 국민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후회 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에게 “이론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똑똑하게 독도를 지켜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은 정 씨. 그의 독도 사랑은 독도로 떠나던 55년 전 그날과 꼭 같은 크기다.

변선영 기자shiny303@ehw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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