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현상문예 소설부문 가작 수상작

캔을 해체하다 1. 캔 해거름이었다. 나는 어둠이 점차 부피를 늘려 가는 방안에서 결함이 발견된 새 프로그램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결함은 언제나 그랬듯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창문 앞에 섰다. 초저녁, 이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휴일을 고스란히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 모양이었다. 맞은편 원룸에 켜진 네모난 불빛들이 전부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였다. 그런 때가 있었다. 모니터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떼고 사무실을 둘러보면, 전혀 새로운 장소에 온 것 같았다. 17인치 모니터 앞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가 하나씩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뚜렷한 이유 없이 살의가 느껴졌다. 내가 내 일에만 매달리고 있는 사이에도 수많은 모니터들이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적대적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모니터들을 외면하는 순간,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술 주정에 무언으로 저항할 때와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 창 밖으로 먼눈팔고 있던 시선을 방안으로 돌렸다. 원룸 단지의 풍경은 전산실의 모습과 닮은 데가 있었다. 나는 밤이 되어도 집에 불을 켜놓지 않았다. 내 집 창으로부터 새어나간 빛이 누군가에게 발견되면, 그 사람 역시 나와 비슷한 살의를 느낄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러하듯이, 그 사람 역시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에 돌멩이를 집어들지 몰랐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돌멩이가 날아드는 일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귀찮은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냈다. 책꽂이에 진열된 수많은 캔을 향해 건배를 청했다. 방의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에는 책 대신 갖가지 종류의 캔이 놓여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아니, 책을 혐오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책들을 한꺼번에 내다버렸다. 특별히 아끼던 책들은 성냥불을 그어 오랫동안 태워 없앴다. 그렇게 500권 가까이 되는 책들을 처분하고 나니 책장의 빈자리가 눈에 밟혔다. 그래서 그 자리에 캔을 세웠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캔 모으기는 사춘기 이후로 지속되어온 나의 유일한 취미였다. 나는 50년대 미군부대에서 나온 양철로 만든 버드와이저 쓰리 피이스 캔으로부터, 79년 처음으로 생산된 OB 투 피이스 캔, 아래쪽은 알루미늄이고 위쪽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최신 코카콜라 캔은 물론, 그 외에도 많은 나라에서 생산된 캔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도 같은 것은 없었다. 200개에 달하는 캔을 모으기 위해서 술집이나 카페에 갈 때마다 희한한 술이나 음료수를, 그것도 꼭 캔에 담긴 것만을 마셨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지만, 나는 단지 새로운 깡통을 얻고자 했을 뿐이었다. 무엇을 마시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껍데기를 얻는 것이었다. 캔의 구멍을 귀 가까이 갖다대면 미세하고도 깊은 소리가 들렸다. 영혼의 깊은 숨소리. 어린 시절, 나는 그 소리를 오래도록 들으며 가슴속의 울분을 지그시 누르곤 했다. 캔의 안쪽이 비어 있고 또 어둡다는 것이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그 깊은 공간에 귀를 갖다대고 있으면 나를 옥죄고 있는 삶으로부터 물러 나와 완전히 보호받고 있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반면에 빛은 언제나 성가셨다. 세상의 빛은 나무등걸을 닮은 아버지의 굽은 등과 붉은 코를 선명하게 비추고, 널빤지로 격벽(隔壁)을 삼은, 밤이면 신경통으로 늙어 가는 어머니의 숨소리 한 낱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두 칸 짜리 애옥살림과, 언제 갈아입었는지 알 수 없는 스웨터에 흙 감탕이 된 손을 아무렇게나 문지르는 동생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빛은 이미 당연해져서 슬프지 않게 된 일들을 낯선 비극으로 만들어, 아직 희망을 배우지 못한 나의 눈앞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리곤 했었다. 기분이 우울해질 때면, 말없이 방에 쳐 박혀 그 동안 모은 캔들을 꺼내 보곤 했다. 캔들은 제각각의 모양과 소리와 체적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것은 우울해 보이고 또 어느 것은 발랄해 보였다.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있었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도 있었다. 모든 캔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그 모양이나 크기는 각각 달랐다. 각각의 구멍은 그 모양과 크기에 적당한 어둠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 인생은 그 중에 투박하고 색이 바랜, 반쯤은 형편없이 녹슬어 색깔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린 복숭아 넥타 같았다. 캔 맥주를 마시며 나의 사랑하는 ‘캔꽂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를 닮은 그 복숭아 넥타는 이제 없었다. 몇 달 전부터 내 수집품은 누군가에 의해 도난 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 내 수집품 1호가 없어졌음을 깨달았을 땐 물론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깡통 도둑이라니. 빈깡통을 훔쳐가서 어디에다 쓴단 말인가. 집에는 그보다 값나가는 물건이 얼마든지 있었다. 펜티엄 투 프로세서가 장착된 아이비엠과 정밀한 그래픽 작업을 위해 들여놓은 25인치 모니터, 두께가 3센티미터에 불과한 초경량 노트패드, 인쇄된 그림도 얼마든지 복제해내는 스캐너, 렌즈를 투과한 영상을 곧바로 디스켓에 저장하는 디지털 카메라, 그 외에도 3개의 짚 드라이브와 시중가로 500만원에 달하는 프로그램들이 널려 있는 방이었다. 그런 방을 털러 들어와서 반쯤은 형체가 없어진 낡은 복숭아 넥타 캔만을 집어간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캔이 사라지자 의구심은 도둑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복숭아 넥타 이후로 사라진 캔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비슷한 높이였고, 모두 손가락 두 개만 가지고도 간단히 구길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만들어진 알루미늄캔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나 같이 비정상적인 놈이 있어 깡통수집을 하려는 것이라면 시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최근의 캔들을 훔쳐갔을 리 없었다. 설사 빈깡통이 가치가 있다 한들 한 번 들어올 때마다 한 개씩의 캔만을 가져간다는 것 또한 이상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몇 개의 캐릭터가 떠올랐다. 놈은 분명히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편집증 환자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내가 모아놓은 캔처럼 머리 속이 텅 빈 무뇌아이거나, 아니면…아니면 유령임에 틀림없었다. 유령.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머리 속에는 눈빛이 날카로운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은 겨우 22살의 나이에 제주도의 해변도로를 달리다가 실수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로 실종되었다. 녀석이 떨어졌다는 절벽 밑 해변을 며칠씩이나 수색했지만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녀석은 정말 유령이 된 것일까. 그래서 이제는 내 방에서 빈 캔을 하나씩 훔쳐내며 소생을 꿈꾸는 것일까. 잡고 있던 캔이 우직,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구겨진 맥주 캔을 기울여 남은 맥주를 한번에 들이켰다. 너무 오랫동안 일을 해서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유령이라니. 육 년이 지났다. 이제는 녀석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도 되었다. 설사 죽지 않았거나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었다고 해도 녀석이 내 방에 찾아 들어올 이유는 없었다. 그 죽음은 온전히 녀석의 것이었다. 물론 나는 한번도 녀석을 죽인 적이 없었다. 2. 보안 시스템 내 일상은 평범했다. 여의도에 있는 컴퓨터 회사에서 10시간쯤을 근무, 작업한 내용을 저장하고 퇴근, 사람들로 북적대는 지옥철에 승차, 중간에 한 번을 갈아타고 집 앞 전철역에 하차, 역에서 원룸 아파트까지 약 10분쯤 도보로 이동, 집에 도착. 언제나 간략하고 깔끔했다. 그 날도 나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원룸 맨션 2층에 있는 내 방에 들어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피로감이 막 안도감으로 뒤바뀌려는 찰나, 나는 복도의 구석진 곳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아니, 그 사람에게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으므로 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한주야. 쉽게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음성. 그 소리는 마치 빈 캔 속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긴 여운을 남겼다. 뒤를 돌아보았다. 거짓말처럼,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동안 내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공포는 즉각적이지 않다. 자동차에 치일 뻔한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그 자동차를 용케 피하고 나서인 경우가 많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만약에 그 자동차에 치였다면…하는 생각이 불현듯 고개를 드는 순간, 공포는 비로소 찾아든다. 복도에 완전하게 혼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은 바로 그 공포였다. 황급히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섰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네덜란드산 하이네켄이 없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나에게는 유서 깊은 캔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다시 구하면 그만이지만, 그것만은 그럴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을 때, 그 순간 내 손에 쥐어져 있었던 그 캔을 다른 것과 바꿀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어깨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미처 대비를 해두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뒤늦은 후회를 하다가 방안에 정처 없이 떠도는 향기를 맡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구에게서, 언제 맡았던 냄새인지 기억해낼 수 없었다. 오랫동안 곁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의 체취 같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간 사람의 머릿내 같기도 한 그 냄새. 다시 공포를 느꼈다. 누구일까. 누가 이런 냄새를 내 보금자리의 한복판에 함부로 흘려두고 간 것일까. 정말 녀석의 유령이 찾아온 것일까. 아까 복도에 서 있었던 사람은 누구일까. 머리 속의 데이터를 뒤져보았지만 나를 찾아올 사람의 목록은 없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앞에 있는 원룸 아파트가 경비가 허술한 건 당연했다. 수위나 정해진 관리자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건물로 올라오는 현관은 항상 열려 있었다. 잠금쇠 두 개에 행어도 붙어 있었지만, 잠금쇠 정도야 맘만 먹으면 누구나 열 수 있는 것이었고,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행어는 외출하게 되면 무용지물이었다. 열쇠를 바꿔 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캔을 숨겨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놈이 집안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법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 캔들을 매일 같이 바라보며 느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서 지문 채취를 하는 것은 어떨까. 실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누군가 빈깡통을 훔쳐간다고 말하면 경찰관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쉽게 상상이 되었다. 방법은 하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내 방은 복도의 끝에 있어서, 굳이 들어올 것이 아닌 이상 앞을 지나치게 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카메라에 거리 센서를 장착해 컴퓨터에 연결한 다음,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피사체를 전부 촬영하도록 프로그래밍하면 될 일이었다. 적외선 거리 센서를 구한다거나, 누군가 접근할 경우 카메라에 비친 영상을 컴퓨터에 자동 저장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바깥으로 노출될 디지털 카메라와 센서를 어떻게 숨기느냐가 문제였다. 고심 끝에 복도 끝에 달린 소화전 박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 붉고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속에는 간이 소화기와 비상탈출을 위한 단단한 밧줄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 상자를 몰래 열고 적외선 센서와 디지털 카메라를 넣은 다음 밧줄로 가리자 감쪽같았다. 나를 도둑으로 간주하고 찍은 몇 차례의 시험 촬영은 감시 시스템이 그런 대로 쓸만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화면이 필터라도 끼운 것처럼 붉은 색으로 뒤덮이고, 입자가 거칠어 선명한 사진을 얻기는 힘들었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에 대비해서 피사체가 접근할 경우 카메라가 5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자동 노출되도록 프로그램을 조절해 놓았다. 근 일주일 동안 내 방 앞에 머무른 사람은 없었다. 그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신원은 알 수 없지만 외판원임에 분명한 한 사내와, 개업 딱지를 붙이러 온 중국집 점원을 제외하면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은 찍히지 않았다. 방문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하고 나니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두 명이나마 사진이 찍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단 한 장의 사진도 저장되지 않았다면 외딴 섬에 홀로 살고 있는 듯한 유폐감에 하루쯤은 야릇한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한 달쯤 되었을까,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을 확인하는 일이 점점 지겹게 느껴지던 무렵의 어느 날, 그날 따라 만취하여 늦게 귀가한 나는 무려 50개의 새로운 그림파일이 하드디스크에 기록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순간 술기운이 말끔하게 걷혔다. 페인트샵 프로를 가동시키고 저장된 파일들을 하나 하나 열어 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진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한데 엉켜 키스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긴 머리카락과 날씬한 몸매로 미루어 보건대 상당히 아름다운 여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다음 파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두 남녀의 사진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이 되어 사진을 계속 넘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50개의 사진 모두가 그 두 사람의 사진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애니메이션 프로를 가동시켜 그 사진들을 연속으로 돌려보았다. 사진 사이의 시간이 길어 동작이 불연속적으로 느껴졌지만 그것이 약 4분 동안 계속된 진한 키스장면임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은 붉은 색의 화면과 조화를 이루어 무슨 상업용 뮤직 비디오처럼 선정적으로 보였다. 영상은 남자가 여자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데에서 끝나고 다시 앞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키스신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키들키들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괜스레 분노가 치밀어 영상 속의 남녀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 열심히 키스하고 섹스하고 잘 먹고 잘 살아라. 다음날 나는 보안 시스템을 수정했다. 피사체가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경우에도 한꺼번에 10장 이상의 사진을 찍지 않도록 조정해 놓았다. 범인은 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리라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문을 열려고 노력한다. 첫 번째 사진이 찍히고 후레시에 놀라 범인이 고개를 돌리면 계속해서 다음 사진들이 찍힌다. 범인이 아무리 용의주도하다 해도 자신의 얼굴을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프로그램을 완성해 놓자 기분이 좋아졌다. 나의 보안 시스템은 이제 더 진화되었다. 3. 아마존 집으로 돌아드는 골목 어귀에서 그녀를 본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수은주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차가운 날씨였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별반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 묵묵히 걷고 있었다. 새벽에 맥주가 떨어졌을 때 자주 들르는 편의점을 지나 비탈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일분 정도만 더 걸으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깃을 바짝 세운, 낡고 추레한 트렌치 코트의 여자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코트 깃은 그녀가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양옆으로 심하게 나부끼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은 마파람을 거스르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것처럼 비장한 데가 있었다. 그녀는 마치 바람을 몰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차가운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거리를 여자는 마치 태풍 속을 지나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한 걸음 밖에는 차이나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달라붙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서 풍기는 야릇한 냄새에 빠져 있었다. 그 냄새를 맡자 그녀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았다. 어디서 만났을까. 그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때 그녀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었고 놀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급히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그녀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낯익은 그녀의 옆얼굴. 이마에서 시작된 완만한 곡선이 콧날에 이르러 갑자기 완고해지고 날카로워지는 얼굴. 그래서 서글서글한 눈매와 아담한 입술에도 불구하고 도전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던 그녀의 얼굴. 물론 나는 그 얼굴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이미 왼쪽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총총히 사라져 버린 후였다. 그 골목입구로 뛰어가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러나 싸구려 자취방이 촘촘하게 병립해 있는 수많은 사각대문의 숲을 대하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잘못 봤겠지. 피식 웃었다. 자취촌을 등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끔씩 이럴 때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언젠가 본듯한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혹은 기억 속에 저장된 누군가와 흡사한 걸음걸이를 보고 선뜻 놀랄 때가 있었다. 세상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삶은 더더군다나 많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독신자들이 살고 있는 원룸만 해도 비슷한 시간에 불을 켜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역시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삶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여자를 옛사랑으로 착각한 경험이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 나는 자취방이 몰려 있는 골목어귀를 지날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한 느낌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한 번은 그 앞을 지날 때 불쑥 튀어나온 한 여자 때문에 오던 길을 되짚어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여자는 물론 그녀가 아니었지만. 인하. 아마존. 그녀의 별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 아마존이었다. 아마존들은 남자를 거부한다. 그들은 금남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남자들과 맞서 싸웠으며, 심지어는 활을 잘 쏘기 위해 오른쪽 가슴을 잘라냈다. 그들은 종족번식을 위해 남자를 납치하여 잉태한 다음, 남자는 추방하고 태어난 아기가 여자일 경우에만 양육했다던가. 인하는 가냘퍼 보이는 얼굴과는 딴판으로 매사에 도전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그녀가 자아내는 외모와 성격의 불협화음 때문에 나는 첫눈에 그녀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어쩐지 나와 무관한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인하는 나를 포함해 주위에 있는 남자를 동료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논쟁상대일 뿐이었다. 동성연애자이거나 불감증인 게 틀림없다고 뒤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3학년이 되자 연애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변화를 희한한 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변신을, 아니 그것만을 꿈꾸어 왔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속의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여성을 숨겨왔을 뿐이라는 것을. 그런데 그 왕자님은 인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그 왕자님은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인하와는 반대로 모든 여자를 여자로만 보았으므로. 아마도 인하는 그가 여자로 보지 않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여자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인하가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 지난 일이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맞은편 원룸의 창문들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설사 그녀가 맞다 해도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에 대한 기억에 쓸데없는 상념을 덧붙이느니 하루 빨리 깡통 도둑을 잡을 방책을 세우는 게 나았다. 복숭아 넥타가 사라진지 벌써 한 달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키스하는 남녀 이후로 내 방 앞에 나타난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주기로 계산해 보건대 범인은 벌써 나타났어야 했다. 점점 초조해졌다. 어쩌면 이러다가 그 도둑이 영영 나타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 그 때쯤 설상가상으로 보름 동안의 출장명령이 떨어졌다. 부산에 있는 한 은행의 전산 시스템 프로젝트에 내가 포함된 것이었다. 말이 보름이지 밀레니엄 버그까지 대비하려면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애초에 15일 동안으로 예정되었던 프로젝트는 예상대로 거의 한달 동안 지속되었다.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아침에 은행으로 출근해 C언어로 프로그램을 짜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오전에 만든 프로그램을 다시 어셈블리로 불러들여 작업한 다음, 저녁을 먹고 나서 하루 종일 프로그래밍한 것들을 검토한 후 전산일지에 그날의 작업량을 입력하고 나면 퇴근이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본사에서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던가. 졸업 후 진로를 소프트웨어 쪽으로 잡고 본격적으로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포부는 남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다. 1학년 때는 구국의 대오를 품고 투사를 자처했다가 2학년이 되자마자 변절한 놈이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덤빈 것도 겨우 일 년, 이번에는 전혀 엉뚱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설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한번도 작가의 꿈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파이프를 들고 구사대를 서서도, 배신자란 멍에를 지고 소설을 구상할 때도, 언젠가는 훌륭한 작품을 써내겠다는 믿음은 곧아지기만 했다. 그러나 2년간의 습작기간은 내가 글쓰기에 전혀 소질이 없다는 사실만을 증명해 주었을 뿐이었다. 장남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진학을 포기한 누나의 희생과, 청소부니 파출부니 온갖 천한 일들에 주름살이 굵어진 어머니의 기대를 만년 문학지망생이라는 보잘 것 없는 미래로 값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또 다른 작가, 컴퓨터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길이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가족들에게, 특히 어린 동생에게 웃음을 되찾아주어야 한다는 장자로서의 의무감과, 불멸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개인적인 열망을 화해시키는 훌륭한 미래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타이프 치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버렸다. 컴퓨터 속에 이야기는 없다. 그 속에는 코볼과 베이직과 어셈블리, 수많은 비트의 조합이 있을 뿐이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는 없다. 그는 언어를 다루지 않는다. 그는 게임의 진행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계산할 뿐이다. 천재적인 시나리오 속에서 이야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영원히 반복되는 이야기.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나의 삶이었으며 따라서 나는 아무 것도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한달 동안 나는 보안 시스템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가끔씩 동료들과 부산의 해변가에 나가 소주잔을 거우르며 망각의 숲을 더듬기도 했지만, 얼마 전 보았던 아마존의 뒷모습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일을 끝낸 마지막 날, 나는 동료들과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한 횟집에서 술을 마셨다. 언제나처럼 술자리는 파견 나간 회사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의 껍데기 품평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신개발 프로그램 얘기에 집중되다가, 웃음 끝에 묻어 나오는 몇몇의 한숨소리를 신호로 고즈넉해졌다. 그 한숨에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별탈 없이 마무리한 데서 오는 자기만족과, 그만큼의 공허감이 뒤섞여 있었다. “언제나 이놈의 빌어먹을 코딩 일 때려치고 번듯하게 독립하나. 젠장.” 나이 사십이 다된 왕고참이 소주 한 병에 어김없이 신세타령을 시작하자, 삼십대 중반이 된 내 사수는 서투른 술 솜씨로 보조를 맞추며 그럴 듯한 추임새를 넣었다. “에이 씨발, 이놈의 소모품 인생.” 그러자 이제 갓 들어온 스물 다섯 살 짜리 신참이 자기에게 할당된 대사를 펜티엄 세대답게 잽싸게 해치웠다. “그래도 선배님들만큼 인정받는 프로그래머가 쉽나요, 그렇죠 한주 선배?”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내 팔을 툭 건드렸다. 만만한 선배를 공범자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아부가 진실하지 않다는 것조차 인정받기를 원하는 녀석의 의도는 너무 빤했다. 딴에는 그런 식으로 선배들의 매너리즘에 도전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봤자 녀석의 대사는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매번 똑같았다. “모르는 소리하지 마 임마. 말이 좋아 프로그래머지 좀만 나이 들면 살얼음판이야. 겨우 익숙해진 시스템 나이 사십 돼서 교체돼 봐. 너처럼 젊은 놈이야 금방 적응하겠지만, 내 나이만 돼 봐, 이 굳은 하드가 돌아가나. 하루아침에 시스템 다운이다. 업그레이드? 백년 고쳐봤자 386이 펜티엄 되겠어?” 왕고참이 신참의 아부에 흡족함을 감추지 못하며 일종의 겸손함을 보이자 사수는 나에게 속삭였다. “너도 돈 좀 꾸준히 모아둬라. 눈치 잘 봐서 뜰 때 뜨고. 광고하는 놈들이나 우리나…, 알지? 사십 될 때까지 큰 건 하나 못 잡으면 노후는….” 그는 왕고참 쪽을 흘낏 바라봤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기사, 넌, 독신이고… 알아서 잘 꾸리겠지.” 그 이야기를 하며 그는 내 진품 아르마니 코트와 목도리, 모리츠 라이터 같은 것들을 눈여겨보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나는 악착같이 진품이든 가짜든 무조건 유명상표가 붙은 것만을 구입했다. 상표는 옷이 아니라 내 몸에 달라붙어, 나를 다른 집안환경과 성장과정을 거친, 원래의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나의 완벽한 상표도배에 주목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어두운 집안배경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었다. 나는 어느새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아들’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유쾌한 일도 아니었지만 불쾌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웃었다. 어차피 사람들이 보는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발견하는 것 중에 확실한 것은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사실뿐이었다. 언젠가 30대 중반이 되면, 나도 신참에게 비슷한 소리를 반복하리라. 그 때까지 사수가 했던 말을 기억만 하고 있으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될 거였다. 손에 쥐고 있던 8.15 콜라 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재활용되는 캔임을 표시하는, 두 마리의 뱀이 꼬리를 물고 도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화살표가 눈에 밟혔다. 갑자기 답답해져서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마셨다. 취기가 도는지 탁자가 빙빙 돌았다. 사람들도 돌고 돈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버려지고, 재수가 좋으면 재활용되어 다시 소모된다. 불콰하게 취해 버린 왕고참의 모습은 재활용되기를 기다리는 8.15 콜라 캔 같았다. 남아 있는 콜라를 단숨에 들이마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점차 취객들로 무르익어 가는 횟집이 쓰레기통처럼 지저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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