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현상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목걸이를 빌리다 마틸드 르와젤 부인은 비참하였다던데. 몸치장을 할 수가 없어서 수수했기에 비참하였다던데. 마치 사회 밑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비참하였다던데. 나는 여기서 벌써 그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괴로웠다던데. 온갖 우아한 것과 사치를 누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면 무척이나 괴로웠다던데.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초라한 집과 곤궁한 벽이 그녀의 집과 똑같았다. 자기 계급의 다른 여자는 느끼지도 못할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그녀는 괴롭고 화가 났다는데. 그녀는 눈을 감았다던데. 그리고는 우아한 대기실이나 안락의자, 두 명의 하인들 등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던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상류 사회를 동경해야만 했을까? 스스로도 그 시간이 끝나면 더 없이 비참했을 텐데. 그녀는 그 괴로움을 즐기는 변태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태로 가득차있다. 만원 버스만 골라 타는 변태가 있다. 겨드랑이 냄새 맡기를 좋아하는 변태도 있다. 남의 몸에 오줌 갈기기를 소망하는 변태가 있는가 하면 자기 몸에 촛농을 뿌려대는 변태도 있다. 노브라에 흰 블라우스를 입는 변태가 있고 양복바지 밑에 레이스 양말을 신고 있는 변태도 있으며 길거리의 개를 보고 정욕을 느끼는 변태도 있다. 어떤 변태는 변태의 성기를 극세사 레이스 다루듯 섬세히 만지는데 그 과정을 하교하는 여학생 무리에게 보여주며 점차 속도를 붙여 흔들곤 한다. 그런데 그 변태짓을 보며 흥분하는 변태도 있다. 그는 어느 무리에 섞여서는 소리를 지르는 척 하며 눈 한 번 깜빡이기를 아까워하고 있으니 신경을 기울여 파악해보도록. 그런 걸 당해본 적도 없으면서 상상하며 은근히 웃는 변태도 있다. 누군가가 나를 거칠게 다루어주길 바라, 어느 유럽 산지기가 별장 부인을 다루듯이 지방 사투리로 욕을 하면서, 옷을 찢고 다리를 잡고, 하지만 삽입은 안돼, 사정은 안돼, 끝까지 가면 안돼, 상상일 뿐인데 무엇이 나쁜가. 그저 머릿속으로 그리는 판타지일 뿐인데. 그는 그렇게 믿고 있지만-싶어 하지만- 사실은. 한편으로는 그런 변태를 미친 듯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은 그 사람도 변태인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토록 정과 성을 다해 증오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그 에너지를 다른데다 쏟을 수도 있는 것이다. 뭐, 예를 들면 요리를 한다거나, 벽돌을 쌓는다던가, 글을 쓴다던가 하는 생산적인 부분에다가. 나는 그를 죽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사실 이는 매우 귀찮고 지겨운 일이다. 그를 보고, 그를 각인하고, 그를 생각하고, 그를 추억하고, 그를 그리고, 그를 곱씹고, 그를 곱씹고, 그 때문에 울고, 그를 상상하고,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고, 만족하고, 이러다보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결국 그 자신인 것이다. 이는 마치 사람이 사랑을 할 때와 비스무리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그래서 사실은 변태를 미칠 듯 싫어하는 그 역시 변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치다보면 나도 변태임이 분명했다. 나는 무언가가 섞인 냄새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출근길 김밥이나 퇴근길 버스 냄새를 참지 못하는 변태였다. 여기서 초점은 그냥 마음으로 싫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언니는 어떻게 그 냄새를 다 구분해요? 그렇게 묻는 직장 동료의 입에서는 꼬물꼬물 먹고 있던 김밥 냄새가 났다. 나는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눌렀다. 많은 사람들이 출근길에 먹는 게 김밥이었다. 잠이 덜 깬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가는 중 휴게실을 지날 때면 나는 언제나 숨을 참아야만 했다. 무심코 하루 잊고 공기를 들이마셨다간 복도까지 밀려나오는 김밥 냄새에 코가 짓눌리고 마는 것이다. 김밥의 눅눅한 김 냄새는 따끈따끈한 것이 여름철 거리에 버려진 복어 같았다. 비늘과 눈깔, 췌장과 뼈가 부어올라 터지기 직전에 가장 강하게 나는 생선 냄새처럼, 시금치도 김치도, 참치도, 햄도, 맛소금이나 미원을 잔뜩 친 짭짤한 밥알도, 목숨을 끊기 직전에 최선을 다해 존재를 알리려는 처절한 외침을 했다. 그 중 가장 싫은 것이 단무지였다. 단무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큼하지만 특히 누군가의 침과 한데 뭉쳐서 입 안을 구를 때는, 맙소사,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지린내를 내는 것이었다. 저도 사람 많은 버스가 싫긴 하지만 언니처럼 구분하진 못하겠던데. 퇴근길 버스도 지독했다. 버스에 들어서자마자 공기는 어깨를 짓누르는데, 그리고는 바로 콧구멍을 찌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공기는 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이 위로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아래로 내뿜는 질소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피할 길이 없다. 고개를 위로 쳐들면 대머리 아저씨와 마주 보아야 한다. 그는 돼지 창자 냄새가 구겨진 주름 사이로 밴 양복을 입고 있다. 어떤 땐 시뻘건 얼굴을 한 대학생들을 마주 보아야 하는데, 그들은 끄윽 하며 위산을 통과하여 뱉는 술 냄새를 풍긴다. 가끔은 그들 모두에게서 니코틴 찌꺼기가 말라붙은 입 냄새도 맡게 되는데 이는 누런 가래를 뱉는 입이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중년 여자들의 냄새가 난다. 그들은 누런 면 팬티에 암모니아를 찔끔 지렸다. 새파란 아가씨들은 탐폰을 잘못 끼워 생리가 새는 줄도 모른다. 그들은 오래된 돼지고기가 녹는 것 마냥 피비린내를 잔뜩 풍긴다. 가끔은 양키들이 노란 털이 난 겨드랑이에서 쉰내를 풍기기도 했다. 꼭 그럴 때는 산성비 맞은 흙냄새를 매캐하게 학생들도 교복을 입고 옆에 서 있다. 무좀은 남녀노소도 차별하지 않는댔지. 군데군데에서 나는 발 냄새는 때가 더덕더덕 붙은 엄지발톱에서 나는 것인데, 그 엄지발가락은 누구나, 아저씨도 대학생도 아줌마도 아가씨도 가끔은 어린이까지 땀으로 질척거리는 신발 속에 숨겨두고 있다. 토기를 억누르고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너무도 싫어하니까 구분할 수 있는 거야. 증오와 사랑이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처럼. 그렇게, 나의 변태는 오감이라는 근원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변태였다. 모든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어린 때가 있었다. 뭐야, 이 도로는, 감색 타일에 초록색 무늬를 넣었어, 뭐야, 이 소리는, 회색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소음이 곧장 뇌를 터뜨릴 것 같아, 뭐야, 이 초밥은, 수돗물에 절인 생선 맛이 역겨워. 문제는 염소 섞인 물 냄새보다 강한 와사비가 미친 듯이 혀를 쏘아대고 있다는 거야. 그러나 그들은―시각과 청각과 미각은― 돈을 벌어야 할 나이가 되면서부터 어느 정도씩 둔해지기 시작했다. 얄팍한 내 월급봉투로는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달은 듯 했다. 다행히도. 그러나 후각만은, 불행하게도, 그만큼 현명하지 못했다. 그는 절대로 콧대를 굽히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각과 청각, 미각이 포기한 만큼의 변태성을 몽땅 쓸어가져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심산이었는지 점점 더 뾰족해지기만 했다. 이는 언뜻 보기에 그냥 특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귀하게 자랐구나 하고 생각하는 듯 했다. 또는 얼핏 지나치기엔 독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 냄새들을 다 구분해? 하고 묻고 넘어갔듯이. 게다가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니꼽게 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네가 그렇게 잘났는가? 하는 비아냥을, 지금 내 얘기를 듣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로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 정면으로 받아치지는 못했지만 억울했다. 내가 그만큼 잘났으면 이만큼 괴롭겠는가? 하고 되묻고 싶었다. 나도 도련님이길 바랐다. 이불에 장미 꽃잎을 뿌리며 정취를 느끼는 한량일 수 있길 바랐다. 버스 냄새와 김밥 냄새를 싫어할 수 있을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김밥에서 단무지를 빼는 일 정도였다. 그리고 일부러 퇴근 시간을 늦추어 만원 버스를 피하는 일 정도였다. 그것이 내 능력의 범위 안에서 취할 수 있던 최선의 방어였던 것이다. 르와젤 부인도였을까. 그녀가 화려한 무도회 상상을 했던 것도 방어 차원에서 한 일이었던 걸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꿈으로만 그려야 했으니까. 김밥 같은 건 먹지 않아도 되는 삶, 청량한 향기가 나는 자가용을 타고 퇴근하는 꿈.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면 슬퍼져 버린다. 분수에 맞지 않는 감각을 타고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왜 단무지를 빼는 거에요? 김밥은 단무지 맛인데. 내가 빼낸 단무지 조각을 집어 오작오작 씹으며 동료는 물었다. 그렇다. 어차피 싫어하는 김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이라면 단무지를 빼던 먹던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분은 어느 쪽이라도 비참하다. 하지만 나는, 아까도 잠시 언급했듯이, 마음보다 몸이 앞서 그것을 거부하는 변태였던 것이다. 마음은 단무지를 초월해도 몸은 그러지 못해. 특히 혀는 조금 둔해졌다 하더라도 코가, 이 멍청한 코가 그러지 못해. 후각은 나를 용서치 않았다. 출근길 휴게실 앞에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이런 데서 사느니 죽어버려 하고, 내장을 움직였다. 내장이 왈랑왈랑 춤을 추었다. 나는 토했다. 토해도, 살이 빠져도, 이가 썩어도, 후두염이 올만큼 토해도, 후각은 내 사정을 조금도 봐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내 코가 지닌 변태성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이상, 왜 이러면서까지 살고 있니 하는 의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의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명령에 가까웠다. 답하지 못하는 이상 언젠가 숨을 멈추어 버릴 수도 있는 물음. 언젠가 발이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리게 할 수도 있는 물음. 언젠가 손이 목을 조를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는 물음. 그만큼 구조적이고 절대적인 변태였다. 그래서 나는 차장이 퇴근길에 카풀할래? 라고 물었을 때 별 망설임 없이 예스한 것이었다. 그 카풀할래? 는 꽤나 의미심장했다. 차장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귀에 속삭였고, 그 때는 둘만 남았던 야근 시간이었고, 그 야근은 차장이 특별히 나를 지목해서 남아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차를 살 수 있을 때 까지만, 돈을 모을 때 까지만, 이라는 조건을 머릿속으로 붙였다. 차장은 중년남자였고 나는 젊은 여자였는데 그런 건 이제 부도덕의 범주에도 끼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그만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았던 나는, 가난한 만큼 정신줄까지 시대에 뒤처져 있진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차장은 그 나이와 조건에 맞는 부인을 집에 두고 있었으나 당신이 그 이유만으로 나를 비난하려 든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목숨과 윤리 중 어느 쪽을 더 중히 여기는가? (여기서 윤리라 답하는 자 또한 변태인 것이다. 스스로의 목을 조를 만큼 강박적인 도덕관념에 목매길 즐기는 당신을 변태가 아니면 무어라 하겠는가. 여기 은장도를 들고 가슴에 품어 언젠가 조일대로 조인 목을 찌를 수 있도록 고대하겠지. 아마 언젠가 당신을 위한 열녀문이 동네에 서면 성불하여 연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차장 얘기로 돌아와서, 차장은 치즈 같은 남자였다. 슈퍼에서 파는 노란색 판치즈가 아니라 무슨 와인바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색 치즈.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적힌 비닐을 뜯어 칼로 썰어 크래커 위에 얹어먹는 그런 치즈. 세금이 잔뜩 붙는 레스토랑에서 따끈따끈하게 구워진 빵을 반으로 쪼개었을 때 와르륵 흘러내리는 그런 치즈 같은 차장님이었다. 어느 부분이 그만치 치즈 같았냐 하면 둥글둥글한 얼굴이 그러했다. 사람은 좋게 생겨가지고 곰같이 웃는 얼굴도 그러했다. 겹친 목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기름 낀 자국이 그러했다. 그게 마치 치즈에 핀 곰팡이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히 출렁대는 뱃살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배를 비싼 넥타이핀으로 찌르고 있는 부분이 더 그러했다. 터럭지가 고르게 난 손등이 매끈해서 또 그러했다. 그 손등에 매달려있는 퉁퉁한 손가락이 허연 소세지 같았던 것도 좀 그러했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치즈였던 게, 그 많은 여직원 중 나를 지목한 부분이 그러했다. 그래서 몇몇 세상사에 밝은 사람들이 시샘어린 눈길을 보내게 했던 부분이 그러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보조석 가장자리를 만질거리는 부분이 그러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부장이 어쨌니 계약이 어쨌니 하는 얘기를 줄줄 읊어 내렸던 부분도 그러했다.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둔중한 눈빛을 쏘는 부분도 그러했는데, 잠시 망설였다간 잘 들어가라고 말하는 부분 또한 그러했다. 격주로, 주간으로, 삼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던 카풀은 마침내 매일의 한 부분이 되었다. 차장은 어느 날 말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내가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봤던 거 기억해? 흠흠.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지만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내가 묘하게 눈빛 보낸 거 차장님 모르죠,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 마치 그럴싸한 레스토랑 하나를 찾아낸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곳이 유명해질 때 까지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의 비밀 식당으로 간직해야지 하고, 그것은 일종의 성취감이었다. 그런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주었던 것이 바로 차장의 훌륭한 치즈 같은 부분이었던 것이다. 코야, 이제 날 용서해주겠니? 차장은 까만색의 가죽시트를 깐, 까만색으로 썬팅한 유리창의, 까만색의 큰 차를 타고 다녔다. 그 차에는 들어서자마자 매끈하고 청결한 냄새가 나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만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눈을 감아버렸는데 스르륵 구르는 바퀴는 내 눈에 차지 않는 시커먼 도로가 아니라 아름다운 레이스 구름을 타고 날으는 것 같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르와젤 부인에게서 상상하는 법을 배웠기에 그 정도 꿈은 쉽게 꿀 수 있었다. 차장은 나를 꽤 오랫동안 귀여워 해주었다. 그는 꽤 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특히 미국에서 유학했던 오래 전 얘기하기를 매우 좋아했다. 처음 갔을 때는 말도 안 통하고 그래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 내내 테르뷔지-온만 보았지. 여섯 명이서 복작거리고 사는 게 어쩜 그리 보기 부럽던지. 아, 저도 그 시트콤 봤어요. 전 사실 보다가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놀랐다니 어째서? 냉동실에 책을 넣잖아요. 무섭다고. 근데 저도 그런 적이 있거든요. 르와젤 씨가 야회 초대장을 자랑스럽게 내보이지만 않았더라도 부인은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니, 여보, 난 당신이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라고 당황한 낯빛을 역력히 띠었던 그는 과연 진정으로 부인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생화를 달구료. 이런 계절에는 그것이 아주 멋있어 보일 거야. 십프랑이면 두세 송이의 화사한 장미꽃을 살 수 있을 거야. 바보같으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르와젤씨는 아마도 부인을 매우 사랑하기는 하나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남자였다. 이해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결국 그들은 포레스띠에 부인에게 목걸이를 빌려야만 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춤을 추고 싶을대로 추었던 르와젤 부인은 그 후 빌린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왔던 길을 돌아가기까지 했지만 끝내 목걸이를 찾을 수 없었다. 무섭지 않을 수 있겠나요? 전 그 뒤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도무지 읽을 자신이 없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덮고 어딘가에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책장 같은 데 꽂아두었다간 반드시 다시 읽게 될 것만 같아서 냉동실에 넣었어요. 깊숙이요. 사실 그 책 아직도 저희 집 냉동실에 있어요. 꽁꽁 얼어 있어요. 그게 뭐야. 차장은 웃었다.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웃긴 거잖아.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그는 내 뺨을 꼬집었고, 우리는 키스했다. 나는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는 순간 차 손잡이를 잡았다. 키스하는 순간 기시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아아, 나는 목걸이를 빌린 거구나. 아니, 가는 거야? 차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차장은 조금 당황해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상냥히 인사하며 돌아섰다. 차장은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내일 보자고 말을 더듬었고, 그 날 처음으로 내가 집에 들어갈 때 까지 떠나지 않고 뒷모습을 지켜봐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현명하게 발을 빼다니, 이제 어엿한 성인 여자가 다 되었어. 그러나 르와젤 부인이 그러했듯이, 빌린 목걸이로는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대로만 쭈욱 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나는 계속 변태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건은 예상치 못했던 출근길 버스에서 일어났다. 사실 출근길 버스도 꽤나 괴로운 존재였다. 밤새도록 길거리에 토악질한 사람들이 좀비처럼 올라섰다. 그들은 잠바떼기에 온갖 음식물은 다 묻혀가지고는 창문에 얼굴을 붙여 찌그러뜨리고는 코를 골았다. 그 뿐인가.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을 땀냄새를 풍기는 노동자도 있다. 그들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버스에 올라타선 침을 튀기며 정치토론을 했다. 그래도 퇴근길 버스만큼 붐비지 않고, 퇴근길만큼은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출근길 버스를 견딜 수 있게 해 준 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새로운 얼굴이 등장한다. 그녀가 바로 신설동에서 매일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 버스에 올라타 종로 3가에서 내리는 아줌마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아줌마’는 아니었다. 아마도 50세를 조금 넘고 60세가 미처 못된 나이였을 것이다. 그 나이대의 여자들은 아줌마라고 불리면 민망해하고 할머니라고 불리면 또 기분 나빠한다고, 회사 식당에서 누군가가 깔깔대며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아줌마든 할머니든 내게는 관계없었다. 그녀는 그냥, 매일매일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중년의 여자일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특유의 강한 체취가 났다. 그것은 퀘퀘한 담배 냄새와 쿰쿰한 음식 쓰레기 냄새였다. 가끔은 퀴퀴한 술냄새에 드문드문 꿉꿉한 땀냄새가 섞이기도 했다. 작지도 않은 소리로 코를 골면서 졸기도 하였는데, 그 끄덕이는 머리가 가끔 내 어깨에 닿을 때면 3일 정도 감지 않은 머릿기름 냄새가 확 풍겨 와서 내 속을 뒤집었다. 아마 그녀는 내가 추정하는 나이보다 좀 더 젊은 여자일지도 몰랐다. 보통 그런 몸빼 바지를 입고 등산용 조끼를 걸친 여자들은 아무리 제 나이가 30이라도 45세처럼 보이니까. 그리고 그런 옷에 맞추어 얼굴이 변하기 시작하니까. 그리고 새벽 햇빛은 새하얗지만 어두워서, 보다 사람을 늙고 무기력하게, 그래서 추하게 보이도록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녀가 아줌마든 할머니든 아가씨이든 심지어는 아저씨라도 상관없었다. 종로 3가 아줌마는 내게 있어서 불쾌 그 자체였고, 무례의 극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 날이 종로 3가 아줌마를 의식하게 된지 아마도 반 년째였다. 아줌마는 공교롭게도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냄새가 났다. 어김없이 차례대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생선 냄새가, 그 다음은 작게 꺼윽 하며 고기 냄새가, 그리고 온 몸 전체에서 술 냄새, 담배 냄새, 오래된 화장실 냄새가 났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람이 안에서 불어나가면서 그녀의 모든 냄새가 나를 스쳐지나갔다. 튀겨서 깍둑 썬 햄 조각 냄새, 기름에 버무린 시금치 냄새, 깨소금이 살짝 박힌 우엉 냄새, 오래되어 쉬어버린 배추김치의 냄새, 그리고 누렇게 말라버려 그녀의 자주색 조끼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밥알냄새까지. 그제야 그녀가 김밥을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가 항상 끙끙대며 들고 타는 아이스박스 안에는 길다란 단무지가 꿈적거리는 김밥이 한 덩어리, 두 덩어리, 몇 십 덩어리씩 들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그냥 평소처럼 잠을 자버렸으면 그만이었다. 자면서 코를 골아도,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도, 감지 않은 꼽쓸머리를 푸드덕대며 꾸벅꾸벅 졸아버렸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하필, 아줌마는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몇 정거장을 더 갔다. 낡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엥카 비스무리한 트로트를 흥얼거려보기도 하고, 마하바라삼야경을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술을 덜 했던 건지, 전 날 밤잠을 푸욱 잤던 건지, 내 알 바는 아니었으나, 불쾌했다. 종로 3가 아줌마가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이었다. 아가씨, 만날 이 버스 타고 가드라잉? 할 수 없이 아줌마를 마주보았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조오타고 히익 웃었다. 째지는 입 안에서 누런 이가 반짝였다―아니, 사실 그것은 반짝이지도 않았다. 너무 낡고 헐어버려서, 그것이 금니인지 썩은 이인지 처음에는 구별도 하지 못했다―. 아줌마는 내가 대답을 할 새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덥다느니, 버스 값이 오른 게 싫다느니,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라느니 하고.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했다. 아가씨는 몇 살잉가잉? 아가씨는 회사를 다니능가잉? 아가씨는 아직 결혼 안했제? 하고. 그녀의 입에서는, 이제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악취가 났다. 그것은 음식을 먹었던 냄새도, 술을 들이켰던 냄새도, 담배를 피웠던 냄새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그게 아니었다 뿐이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버무려진 냄새였다. 게다가 거기에는 또 다른 냄새도 섞여 있었다. 그것은 쇳내였다. 그 이에서, 갈아 끼운 지가 오래되어 안 쪽에서 서서히 부식되어 썩어 내려져 가는 금니에서는 쇳내가 심하게 났다. 오래된 놀이터의 페인트칠 벗겨진 시소에서 나는 냄새, 비가 추적거리는 날 공사장을 지나가면 철골구조물에서 나는 냄새, 혀를 대어보면 깜짝 놀라도록 비린 맛이 나는 냄새, 그 쇠 비린내, 그 녹슨 쇠의 비린내가 강하게 풍겨 나왔다. 미안해. 엄마 갈게. 미안해. 오빠 갈게. 냄새와 함께, 생각하기조차 싫어 잊어버리고 있던 순간의 목소리들이 머릿속을 화산재처럼 꽉 채워버렸다. 그녀가 쉬어버린 쇳내에 쐐기를 박았다. 내 딸도 딱 아가씨 정도 나이여. 난 우리엄마 없어요. 그 말 대신 나는 우욱 하고 토사물을 입 안 까지 올렸다. 안돼, 여기서 토하면 안돼. 그것을 간신히 꿀꺽 삼키자 아직 위에서 덜 녹아내린 아침밥의 밥 알갱이 하나하나가 목구멍으로 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아가씨 같은 사람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드라이. 젊고… 이쁘고… 때도 하나도 안 묻어서 생가아아앙한 것이, 참 좋드라 그래. 그녀는 계속 말을 이으려던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게우다 삼킨 것이 목에 걸렸던 것이었다. 캑캑거리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오마나, 이 아가씨 와 이라는겨? 종로 3가 아줌마가 내 등을 때렸다. 퍽퍽 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눈물이 맺혔던 것은 그것이 아파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벨을 눌렀지만 다음 정류장 까지는 한참 멀었다. 저상버스는 오르막길에서 속력을 내지 못한다. 오르막은 계속되었다. 꼬불꼬불꼬불거리는 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 내 귓속과 콧속에서 맴돌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오빠가 미안해. 닥쳐. 닥쳐. 닥쳐주세요. 처음으로 소풍이라는 것을 가게 되었을 때 엄마는 서툰 솜씨로 도시락을 싸 주었다. 때가 거뭇거뭇하게 낀 통을 열자 아이의 입에는 너무 커서 넣지 못할 김밥 덩어리들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그렇게 흩어져 엉망이 된 계란말이와 시금치의 맛을 나는 오랫동안 곱씹고 살아야만 했다. 그 날이 엄마가 내게 안녕을 고했던 날이었다. 처음으로 애인의 자취방이라는 곳에 놀러 갔을 때 그는 급하게 내 팬티를 벗겼다. 곰팡이가 시퍼렇게 피어난 천장을 보며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 이게 말로만 듣던 바로 그? 하는 순간에 끝나버린 짧은 시간 후, 그처럼 코골며 자지 못했던 나는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지저분한 책상에는 그의 어머니가 싸놓고 간 김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을 몇 개 집어 먹으며 나는 조금 울었다. 버스에서 나는 냄새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는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받았던 사람,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과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살에서 묻어나오는 냄새. 세상의 찌꺼기들이 고스란히 고여 있는 저상버스가 뒤뚱거리며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을 어렴풋이, 어느 탤런트와 어느 동창과 어느 상사과 어느 꼬마 애의 냄새가 버무려진 형상으로 떠올리고 만다. 종로 3가 아줌마는 계속 내 등을 때렸다. 철퍽거리는 손바닥에서 나는 누르죽죽한 냄새가, 그 체온이, 마찰하는 등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이 버스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딱 달라붙어 있는 그녀와 나를 한 덩어리로 인식하겠지. 내 코는 그런 걸 용서치 않는다. 그는 누가 뭐래도 모든 것을 구분할 만큼 모든 것을 증오할 수 있는 변태니까. “저… 내일부터는 아침에도 데리러 오시면 안돼요?” “왜?” “출근도 같이 하고 싶어서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차장은 억지로 웃음 짓고 있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미심쩍은 눈으로. 나는 조금 가슴이 뜨끔했지만 일단 계속 웃었다. 진심으로 당신과,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고 싶어요. 내 마음이 들리나요? 저는 당신을 이만큼이나 사랑한답니다… 거짓말이여 통하라!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래야 어리둥절해하는 저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차장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래.” 됐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차올라오는 기쁨을 억눌렀다. 숨을 참고 1분쯤 지났을까, 혀를 날름거리면서 처음으로 살짝 눈을 감았다. 아아, 나는 이 남자가 정말로 좋다. 사실 여기서 마음을 멈추지 않으면 조금 위험해질 만큼 이 부드러운 남자가 좋다. 이렇게 키스하고 있는 건만으로도 마음이 부풀어 올라 버린다. 이 남자는 나를 오븐에 넣어주는 남자야. 그래서 나도 실은 치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남자다. 여전히 치즈 같은 그의 입술을 물고 빨고 핥으며 나는 평소처럼 차 손잡이를 잡았다. 지금 내리지 않으면 더 이상을 바랄거란 말이야. 그나마 차에서 몸이라도 내려야 마지막 쪽, 을 하고 집으로 총총 들어가지. 그래, 봐, 난 다 알고 있잖아. 오늘도 여전히 소소한 만족감을 선사해주는 차장님, 당신께 내가 건배를. 그렇게, 차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라?” 정말로 열리지 않았다. “저기, 고장났나봐요.” 하고, 그와 눈을 다시 한 번 마주쳤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까지 몽글몽글하게 녹아내리는 치즈와 같던 그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언제? 언제부터 이 사람이 이런 눈빛을 하게 된 거지? 나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계속 머리를 굴려보았다. 밥 먹을 때도 치즈였고 영화 볼 때도 치즈였고 커피마실 때도 치즈였는데?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곁눈질로 내내 살펴보았던 눈도 치즈였단 말이야? 그렇다면 설마 아까였단 말인가? 키스할 때, 내가 눈을 처음으로 감아버렸을 때, 그 때였단 말인가? 그는 내 팔목을 잡고 있었다. “엄마야,” 갑자기 차 시트가 지잉, 하는 소리를 내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나는 휘청, 하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여전히 굳어버린 눈빛을 하고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저기, 저기요.” “내일 아침에도 와달라며.” 갈라진 목소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얼굴을 확 끌어당겼다.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었던가? 육중한 손이 아무 설명 없이 내 가슴을 마구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사람 손이 원래 이렇게 두툼하고 두서없이 난 털이 구불거리는 모양이었던가? 불길한 예감이 번뜩 스쳤다. 바보같으니. 나는 왜 이제까지 그를 어처구니없는 순정파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대체 그 따위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거지? 정말 순정파였던 건 사실 르와젤 부인이었다. 내가 1분 전 까지만 해도 아아, 이 남자한테 진짜 마음을 주게 되면 어쩌냐는둥, 불륜은 로맨스의 시작이라는둥, 창공에나 붕붕 뜨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와중에 그는 계산기를 두들기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다. 나는 알 거 다 알고 계산할 거 다 하는 성인여자지만, 이쪽은 나만큼 살았고 나보다 더 살아서 부와 권력까지 갖춘 남정네가 아닌가? 그가 지퍼를 내렸다. 팬티를 벗는 순간 나는 왁, 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단무지였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단무지였다. 거짓말, 거짓말이다. 이런 고급차를 타는 사람이 단무지를? 아직도 좋은 냄새가 나는 까만 가죽 시트에 저 토속적인 걸 비벼대고 있었다고? 나라고 중년 남자의 벗은 몸을 상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적어도 이런 차에서 이런 단무지를 보게 될 줄을 몰랐어. 그러나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해야했다.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그만하자고 말해야 하나? 창문이라도 깨고 소리를 질러야 하나? 그러려면 그럴 수 있지.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사실 그럴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목걸이를 빌렸다. 세상은 기브앤테이크. 나는 목걸이를 빌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는 목걸이를 빌렸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목걸이를 걸고 도망쳐 버린다면 지금 받고 있는 얄팍한 월급봉투마저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뭐라고 저항하거나 소리칠 여지도 없었다. 단무지가 쑤욱 들어왔다. 뜨거운 숨이 확 끼쳐왔다. 숨에서는, 퇴근길 버스 냄새가 났다. “아… 으…” 그가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간간히 내 이름을 불렀고 소리를 내라든가 허리를 흔들어보라든가 하는 요구를 했다. 좋으냐고 몇 번씩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것은 정말로 내 의사를 궁금해 하는 물음이 아니라 단지 그 밑에 깔려있는 여자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한 물음이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내 위에서 비켜 이 돼지야. 이 역겨운 너구리야. 나는 그와 함께 한 덩어리의 돼지고기가 되어 너구리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죽인다…” 그럼 죽어버리든가. 죽어. 죽어. 죽어버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보면 폭행당하는 여자들 옆에 유리병도 많고 칼도 많고 심지어는 돌도 많던데, 나는 그를 죽여 버릴 혜택도 받지 못했다. 분해서 눈물이 났다.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파고들어가, 손바닥에는 핏방울이 맺혔다. 시뻘개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지고, 일그러지고, 이제까지 보았던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 안돼. 나는 말했다. 아니,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현했다. 적어도 안 된다고, 싫다고, 온 몸으로 눈빛으로 눈물로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세웠다. 그러나 그는 헉, 하는 소리를 냈고, 곧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런 때에 마저도, 코가 말하는구나. 왜 이러면서까지 살고 있니.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유리가 뿌옇게 될 정도로 차 안은 더운 습기로 가득 찼는데, 추웠다. 차장은 땀범벅이 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헉헉거리며 티슈를 뽑아댔다. 변태같으니. 이 변태같은 자식. 나의 변태를 위해 남의 변태에 맞춘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한 일이었다. 그러고도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굳은 표정으로 상대의 엉덩이를 보는 것뿐이라니. 그것은 정말로, 생각할 수 있는 만큼보다도 훨씬 더 비참한 일이었다. 갑자기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책이 떠올랐다. 목걸이를 잃어버린 르와젤 부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작은 방이었다. 방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일러를 켜고 옷을 벗었다. 일단 몸을 좀 씻어야했다. 변기에 앉아야만 샤워를 할 수 있는 좁은 목욕탕에서 나는 사이사이 때가 낀 타일에 벗은 몸을 기댔다. 이럴 수가. 얼룩진 타일이 아까의 가죽시트보다 따뜻하다. 나는 흐으, 하고 우는 소리를 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은 아직 울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뜨끈뜨끈해진 방바닥을 밟아 냉장고로 향했다. 성에가 가득 낀 냉동실은 생선 비린내를 잔뜩 풍겼다. 책은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나는 책을 넣을 때 보다 더 긴장하면서 얼어버린 종이들을 뜯어냈다. 르와젤 부인은 한층 더 불행해져 있었다. 그녀는 힘든 가사일과 지겨운 부엌일을 하고 서민층의 여자처럼 옷을 입었다. 식료품 가게와 푸줏간에서는 값을 자꾸 깎아서 욕을 먹으면서도 푼돈을 조금씩 절약해 나갔다. 매달 어음을 지불하고 다른 것들은 갱신하고 기한을 연기 받으며 십 년을 흘려보냈다. 십 년이 지나자, 그들은 모든 빚을 다 갚았다. 고리대금의 이자와 쌓이고 쌓인 이자까지 모두 갚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젊지 않았다. 아름답지도 않았다. 화려한 파티를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까지 고갈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않았다. 나도, 희한하게도, 그 구절을 읽으면서 울지 않았다. 고요한 마음이 내내 평온하기만 했다. 아침에 차장이 왔을까? 알 수 없었다.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나서 새벽 버스를 타고 회사로 왔다. 그 시간은 김밥 아줌마가 버스를 타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 이제 괜찮은가잉? 나는 괜찮다고 짤막히 대답했다. 아줌마가 걸어온 말은 별 거 아닌 것이었지만, 적어도 목걸이를 빌려주겠다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김밥을 샀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아무도 없는 휴게실을 찾아 은박지를 끌렀다. 은박지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참기름에 눅눅해진 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김밥을 덥석 베어 물었다. 시금치가 씹히고, 밥알들이 구르고, 우엉이 짠 맛을 내는데, 단무지는 여전히 지린내를 내는구나. 나는 단무지를 빼지 않았다. 우적우적 끝까지 다 씹어 먹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냄새도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중 단무지를 골라낼 자격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외로웠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변태가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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