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한 고려대학교 출교자 인터뷰

이른바 ‘교수감금사태’로 2006년 출교 당했던 고대생 7명이 700여일 만인 20일 복학했다.


‘교수감금사태’는 2006년 4월 5일, 학생들이 통합된 고대병설보건대 학생들의 투표권 인정을 요구하며 보직교수 9명 등과 본관에서 17시간동안 대치한 사건이다.


법원은 출교생 7명이 학교를 상대로 낸 출교 처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지난해 10월 원고 승소를 판결했고, 1월 출교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고려대는 1학기 수강등록 마감이었던 20일 전날인 19일, 이들을 복학처리했다. 복학된 이들 중 김지윤(사회·03)씨와 안형우(국어교육·02)씨를 고려대학교에서 만났다.


-복학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김지윤(이하 김) : 19일에 복학결정이 돼서, 수업들은 지 3일밖에 안 됐다. 전공 수업도 많이 들어야 하고, 밀린 과제도 많아 따라가기 바쁘다.


-출교 처분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나.


김: 처분을 받을 때는 오히려 무덤덤했다. 출교 조치가 뭔지도 잘 몰라서 ‘뭐지?’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다음날 고대생들에게 출교소식을 알리려고 준비하면서부터 긴장감이 돌더라. 등굣길에 나가서 ‘더이상 고대생이 아닙니다’라고 쓴 우드락 판을 들고 섰는데 매일 보던 길·매일 보던 학생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 후 삭발할 때 (학교를 떠난다는 기분이) 절정으로 다다랐다.


-천막에서 700일 간 생활했는데 무슨 일을 하며 지냈나.


안형우(이하 안) : 학생에 대한 부당한 징계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학생자치탄압반대와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학생시민사회연대’를 하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우리를 알리고자 했다. 또 천막은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역할을 했다. 시민단체·노조·각 학교의 총학 등이 지지의 의미로 방문해줬다. 당시 이화여대 총학생회도 우리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 주었다. 


김: 천막농성장을 계속 지키면서 교내에 우리 소식을 알렸다. 강의실에 직접 들어가서 연설도 하고, 교수님들께 조언도 구하고 도움도 구했다.


-출교자끼리 갈등도 있었을텐데.


김 : 7명 중 한 친구는 사정 상 농성을 그만두고, 이번에도 복학하지 않고 휴학했다. 나머지 6명은 함께 했다. 물론 개인생활이 없어서 힘들었다. 가끔 분쟁이 있기도 했는데 크게 ‘폭발’한 적은 없었다. ‘운명공동체’였고 분열되면 이 농성이 끝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출교 조치가 철회될 거라고 생각했나. 


안: 2002년 서울대에서 징계 철회 사례가 있었고 2006년에 동덕여대에서 무기정학된 4명도 징계가 철회됐다. 항공대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그래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고, 여론도 갈수록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다. 국회의원 10명, 학생회장단 70명, 교수님 90명의 연서와 탄원서도 받았다. 홍세화씨나 박노자씨 등의 지지도 받았다. 2008년 안에는 끝날거라고 생각했다.

 
-법원 승소 당시 어땠나.


김 : 법원에서 ‘출교를 무효로 판결한다’라고 하는 순간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법원에서는 소란하면 안 되는데, 아무도 제지조차 안 했다. 천막에서 도와주셨던 학교 환경미화원 두 분이 같이 오셨는데 나를 꽉 안아주시면서 우시더라. 그 전까지는 얼떨떨했는데 그 분들을 보니 느껴졌다.


-힘든 점이 많았을텐데, 후회는 없나.


안 : 후회보다는 학교가 부당했다는 생각이 컸고, ‘여기서 밀리면 학생들이 학교를 다시는 비판하지 못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누리 객원기자 bellarusk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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