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TV방송국 시상식에서 힙합그룹 에픽하이(epik high)가 ‘팬(fan)’이라는 곡을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공연은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은 미스코리아 이하늬의 현란한 가야금 선율과 에픽하이가 부르는 빠른 힙합 비트가 절묘하게 어울린 환상적인 무대였다. 이러한 무대는 아마 타블로라는 천재 음악가가 에픽하이라는 힙합 그룹의 일원으로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번 연예인들의 가짜 학력이 문제가 되었을 때 타블로의 이름도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어떻게 힙합가수가 명문인 스탠포드 대학 영문과를 나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마침 그 때 그의 인터뷰가 실린 ‘스탠포드 데일리’ 학보기사가 알려지면서 그의 학력논쟁은 머쓱해지고 만다. 한국사회에 미친 힙합 문화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타블로가 곡 하나를 만들어서 두 명의 가수에게 동시에 준 적이 있다. ‘남자라서 웃어요’라는 곡은 김장훈에게, 그리고 ‘여자라서 웃어요’라는 곡은 심수봉에게. 똑같은 가사와 똑같은 멜로디, 그리고 중간의 랩까지도 모두 똑같은 노래지만 두 가수의 특성이 워낙 판이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그러나 한편 두 노래는 너무나 완벽하게 각 가수와 어울린다. 게다가 똑같은 가사에 ‘남자’와 ‘여자’만을 바꾸었을 뿐인데도 두 노래는 각각의 젠더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여자(남자)라서 참 슬픈 세상인데.. 울고 싶어도 바보처럼 웃어요.’


결국 이 세상은 남자에게는 남자라서, 그리고 여자에게는 여자라서 슬픈 곳인가 보다. 


그런데 두 노래를 비교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두 노래는 남자, 여자의 완전한 대칭이지만 노래 중간 딱 한 군데에서 그 대칭은 깨진다. 


‘오늘도 술이 취하고 낯 설은 여자 품에 잠이 들죠 (남자라서 웃어요)’


‘오늘도 술이 취하고 낯선 곳에서 슬픈 잠이 들죠 (여자라서 웃어요)’


분명 완전한 대칭을 원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직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남녀에 대한 윤리관 차이가 완전 대칭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리라.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남녀불평등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중심에 이화여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적 개선에 비해 아직도 위의 예처럼 부분적으로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 남녀불평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는 남성이 유리한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병역의무, 가산점 논란 등의 역차별에 대한 문제들이 하나 둘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학력측정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완을 해달라는 남성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외무고시 합격자의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보듯 여성의 학력우월성은 어쩌면 동서양 모두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정부는 작년에 ‘낙제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을 만들어 학교별로 남녀분리수업을 쉽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녀 분리 학교들도 갑작스런 증가세에 있다고 한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남녀평등은 평등해야 할 부분은 평등하면서 차별화가 필요한 부분(그것이 무엇이건 간에)을 찾아 그것을 키워주는 것이리라. 그리고 시험의 형태도 천편일률적인 암기식이나 문제풀이식 보다는 좀 더 창의적이며 다양한 능력을 찾을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논술의 변별력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의 대학들은 입학에 학생이 작성한 에세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인인 타블로가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고아였던 그의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쓴 시를 발견하고 받은 느낌을 적은 그의 에세이가 시험관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탠포드 대학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에세이 답안지가 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모험적이고 도박이었다고 할 만한 사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학생이 ‘This’라는 짤막한 에세이를 제출한 것이다. 그 학생은 합격했다. 유능한 학생을 뽑기 위해 학교도 때로는 모험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 여자라서 웃을 수 있는 사회를 이끌어 갈 리더십을 지닌 여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일까?

박승수 교수(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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