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유동인구 몰려… 상인들 "이화인들 보며 희망 얻어요"

13일(목) 오전9시26분, 이대역에 신도림행 지하철이 들어섰다. 지하철은 문을 열고 수많은 여학생을 토해냈다.

“어휴, 무슨 난리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으로 내려오던 김재옥(62)씨는 양손에 비닐봉지를 든 채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여학생 물결에 함께 휩쓸렸다. “웬 여자애들이 이렇게 많아. 내 생전 이런 모습은 처음 봤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에스컬레이터를 가득 메우자, 반대편으로 시청행 전차도 도착했다. “아, 종과(종합과학관)가야 되는데!” 수업에 늦은 학생들과 채플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의 잰걸음으로 이대역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장면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리고 매 수업시간 전마다 반복된다.

△이대생과 함께하는 이대역

 “지금 성수, 성수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한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대역을 깨우는 것은 오전5시34분 성수행 전차 안내방송이다. 이른 아침임에도 이대역에 정적은 없다.

오전6시30분에 열리는 ‘이화가족새벽기도회’를 위해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는 박순영(체육·04)씨는 “5시30분쯤에 개화산역에서 지하철을 탔다”며 “아침에 오니까 붐비지 않아 좋다”고 웃어 보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부원 오은찬(사회·06)씨도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일찍 온다”며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오전6시30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나타났다. 1교시 수업이 가까워져오자 모두가 종종걸음이다. 이슬비(무용·05)씨는 “실기과목 특강 때문에 일찍 가곤 해요, 아직도 힘들기는 하지만 이제 적응 됐어요”라며 재빠르게 걸었다. “스쿼시 강습 때문에 6시30분에 집에서 나왔다”며 급히 걷는 황우린(영교·06)씨, 이대역부터 학교까지 걷는 건 준비운동을 하는 셈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김정순(수학·05)씨는 “여섯 시에 오목교역에서 지하철을 탔다”며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도 이번 학기 내내 중앙도서관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문학입문 수업 예습을 위해 일찍 학교를 찾은 김주혜(인문·08)씨는 새벽녘에 일어나는 수고를 감수하며 영문학도의 꿈을 키우고 있다.

임춘수 이대역장은 “오전7시30분부터 10시30분까지가 승객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이대생들이 주 고객이 되면서 이대역도 변화했다. 특히 2006년에 완공된 이대역 리모델링 공사는 ‘이화의 배꽃’이 주제였다. 에스컬레이터의 벽에 우리 학교를 상징하는 배꽃이 그려졌고, 지하 2층 천장에는 노랗고 붉은 ‘배꽃등’이 설치됐다. 이 인테리어는 실제로 우리 학교 최경실 교수(공간디자인과)가 디자인했다. 여대생이 많은 만큼, 8대였던 여자 화장실의 변기를 12대로 확충하기도 했다.

  △ 이대역 속 또 하나의 삶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대역’은 종착지가 아닌, 그들의 학교, 직장, 또는 약속 장소로 향하는 통로다. 그러나 그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이대역’에도 분명, 사람냄새 나는 삶이 존재한다.

오밀조밀한 생활용품, 그리고 신간들로 둘러싸인 2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임연진(63세·한우리 2호선 이대점 주인)씨, “정말 책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게 됐지요. 원래는 하루에 한 권씩 읽는데…요새는 늙어서 눈이 잘 안보여”라며 수줍게 웃는다. “어휴, 심심할 새가 어딨어. 계속 책 읽고, 젊고 발랄한 행인들 보면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라는 그에게서 문학소녀였던 청춘이 묻어난다.

“말로 길게 하기보다, 하나 먹어보면 알아요. 자 드셔보세요” 말랑한 인절미를 건네는 백지일(27세·떡 가게 떡쏴 주인)씨가 말했다. 그는 한 팩에 천 원 한다는 각양각색의 떡들을 자식처럼 다루며 진열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단골도 생겼다. 밤마다 백설기만 사가는 사람, 옥수수만 먹는 사람 등 단골손님들이 그의 보람이다.

떡 가게 옆에는 여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힐끔 쳐다보고 가는 화려한 수입 과자 가게도 있다. 가게 주인 김정열(52세)씨 얼굴에는 피로가 그대로 묻어난다. “돈 벌려면 어쩔 수 없지. 이상하게 개강하고 나니까 장사가 더 안 돼. 학생들은 그냥 휙휙 지나쳐가고…”

“동대문, 남대문 지하상가…, 피곤한 줄 모르고 돌아다녀서 가져오죠” 이정미(악세서리 가게 <깍쟁이>주인)씨는 “세련되고 예쁜 이대생들 패션을 맞추기 힘들다”며 웃는다. 매일 보는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꼭 아는 사람 같아 가끔 인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대에서 치뤄지는 갖가지 행사·연주회·졸업·입학 때 꽃을 많이 판다”는 꽃가게 <지하철플라워>의 주인 손규석(52세)씨 역시 이대생 대상으로 장사하다가 지상으로 가게를 넓혀가게 됐다.

이렇듯 각양각색의 삶이 공존하는 이대역은 하루 평균 5만1천여 명이 이용한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은 신도림으로 가는 열차 9번 객차 두 번째 출입구와 시청으로 가는 열차 2번 객차 3번째 출입구다.

임춘수 이대역장은 “오다 보면 자연히 그쪽으로 승객들이 몰린다”며 “신도림에서 갈아탄 인천, 수원 승객들, 시청에서 갈아탄 승객들에게 최단거리”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승객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전부 한줄서기를 한다는 점이다. “두줄서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계속해서 한줄서기를 해요. 그러다 보니 걸어 올라가다가 다치고, 싸우고…” 사람들이 쿵쿵거리며 올라가는 탓에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날 위험도 있다.

임씨는 두줄서기를 당부하며, 이화인에게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이 있다고 밝혔다. “피로에 지친 이대역 직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참 소중하지요. 가끔 매표소 직원들에게 칭찬이라도 해주세요. 그러면 이대역이 훨씬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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