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길들이기
문제아 길들이기
  • 이대학보
  • 승인 2008.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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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지표가 되어주셨던 스승님을 한두 분씩 떠올린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기억에 남는 학생들도 한두 명 생각나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한다. 김병태.. 문제아 김병태.


내가 처음으로 교생실습을 나간 곳은 금곡릉 부근의 한 고등학교였다. 교생실습.. 사회 진출을 코앞에 둔 대학 4학년생이 처음으로 강단의 저편에 서게 되는 설레는 경험이다. 나는 그 한 달의 기간이 내 인생의 가장 기억에 남는, 보람 있는 한 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길진 않더라도 그 기간 동안 진정 학생 편에서, 학생을 위한 교육을 체험하고 싶었다. 내가 배정된 학급의 담임선생님은 얼굴 가득한 주름에 신경질과 권태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후에 알게 된 그의 별명 X걸레가 지극히 잘 어울리는 그런 인상이셨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간단한 학급소개와 함께 한마디의 주의를 덧붙였다.


“교생선생, 뭐 애들 별 문제는 없을 게요. 한 녀석만 빼고.. 병태라는 녀석인데 얘는 약간 문제아지.”


나는 잘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오기처럼 이런 각오를 되뇌고 있었다.


‘선생님. 제게 그런 선입견을 심어주지 마세요. 그런 선입견이 오히려 문제아를 만드는 거잖아요? 두고 보세요. 제가 그 학생을 꼭 바로잡아놓고 말 테니까요.’


그때부터 나의 문제아 길들이기 프로젝트는 용의주도하게 시작되었다. 우선 병태와 대화가 필요했다. 그의 문제를 들어주고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감을 심어주다 보면 그는 분명 바뀔 것이다. 나는 수학시간에 학생들이 칠판에 나와 문제를 풀도록 지시하며 우연인 것처럼 병태를 지목했다. 병태의 첫인상은 약간 의외였다. 나는 좀 우락부락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병태는 하얀 피부에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약간 어두운 표정이 맘에 걸렸다. 그는 문제를 뚝딱 풀고 들어갔다. 그것은 당연했다. 워낙 쉬운 문제를 내가 골라준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짐짓 놀라는 척 하며 칭찬해 주었다.


“김병태라고 했지? 아주 잘 풀었는데. 글씨도 맘에 들고..”


아이들은 ‘뭐 저 정도 갖고..’라는 듯이 낄낄 웃었지만 병태는 만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나의 병태 추켜세우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복도를 지나치다 간혹 만날 때에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농담도 나누게 되었다. 병태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밝아졌고 처음에는 볼 수 없었던 자신감도 차츰 느껴졌다. 나는 그때 확신할 수 있었다. 문제아.. 애당초 그런 것은 없다. 다만 주위에서 그런 환경을 만들고 그런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주홍글씨처럼 본인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그런 딱지를..


어느덧 시간이 흘러 교생실습기간도 며칠 남지 않았을 때 병태가 나를 찾아왔다.


“교생선생님.. 저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요.”


그리고 병태는 한 동안 뜸을 들였다.


“아이 참.. 맨 정신에 말씀드리기엔 너무 쑥스러워서..”


나는 병태의 어깨를 툭 쳤다. “쑥스러우면 말 하지 마.”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고맙다는 그 말을. 나도 속으로 대답했다.


고마운 건 바로 나란다. 병태가 갑자기 생각난 듯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참, 선생님, 내일 소풍가는데 저희와 점심을 같이해 주세요. 꼭 함께 모시고 싶어요.”


나는 그러마고 약속했다.


소풍은 매년 그러하듯 금곡릉으로 갔다. 다른 교생들은 선생님들과 점심 도시락을 나눠먹었지만 나는 병태와 슬며시 그 자리를 벗어나 멀찌감치 떨어진 으슥한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몇몇 녀석들이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기다려 주섬주섬 맥주와 안주를 꺼냈다. 병태가 갑자기 옆에 있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야, 병태야, 한 잔 따라드려. 선생님 얘가 병태예요. 첫날 얘한테 떠밀려서 문제를 풀고 난후 한 달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몇 번이나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녀석들이 모두 키들키들 웃었다. 나는 녀석들의 술판에 끼어있다는 묘한 입장 때문인지 아니면 벌컥 들이킨 맥주 때문인지 얼굴이 갑자기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녀석들의 교생 길들이기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 해 봄, 나는 교생실습을 통해, 그리고 병태를 통해 중요한 가르침을 배웠다.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박승수 교수 (컴퓨터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