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명물, 만리장성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광대한 중국 대륙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어냈다는 평가와 함께 동양적 통합력을 상징하는가 하면 반대로 중화사상이 내장하고 있는 독선의 징표로 비추기도 한다. 세계화 시대에 중국이 갖는 의미 또한 이중적이다. 개혁개방 정책 이래로 새로운 경제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는, 그래서 교류와 협력을 토대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강대국임과 동시에 여전히 닫힌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신흥 패권국가라는 인식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달아오른 ‘닫힌 애국주의’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 동안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토대로 평화적인 대국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으며 올해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이러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과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티베트 무력 진압과 성화 봉송 과정에서의 폭력 시위 등으로 나타난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는 국제 사회에서의 중국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최근 일부 네티즌들은 쓰촨성 대지진을 계기로 중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면서 성금을 내지 않았다는 ‘국제구두쇠 기업 순위’를 발표하면서 맹비난하기도 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중국 정부의 태도다. 중국 정부는 유학생들의 성화 봉송 시위를 티베트 독립주의자로부터 성화를 지키려는 정의로운 행동으로 규정하며 끝내 사과를 거부했다. 더 나아가 한국 정부에게 객관적 처리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중국의 기준에서 정의로운 일이었다고 할지라도 성화 봉송 시위는 폭력을 사용한 엄연한 불법행위였다. 시위대, 경찰, 기자 등 신체적으로 부상을 입은 피해자의 수도 적지 않다. 진정한 대국이라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고개 숙여 사과해야 했다. 정중한 사과 없이 정의를 운운한 중국에게 평화적인 대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족주의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나라에서 개최하는 큰 행사에 애국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국가간의 갈등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외교안보 측면에서 민족주의를 강화해야 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이고 정당한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애국심이라는 명목으로 보편적 가치인 평화, 인권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전쟁·폭력·차별이 난무하는 비이성적 민족주의는 진정한 애국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국의 이미지를 훼손시켜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이다. 물론 일부 극소수 젊은이들의 불법 행동으로 중국인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중국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문제 제기를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매도하는, 중국 내부에서 크게 확산된 이 인식은 분명히 그릇된 생각이다.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중국이 책임있는 대국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논어에는 화동(和同)담론이 나온다. ‘화’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가치인 반면, ‘동’은 지배·흡수 등으로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 가치다. 패권적 구조인 ‘동’의 논리에서 벗어나 공존과 평화의 논리를 정착시키는 것은 세계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논어를 펴낸 중국이 이 과제에 더욱 충실해야함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역시 이번 계기를 통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국적성이 보편적인 진리에 우선할 수도 없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중국이 하루 빨리 중화주의의 덫에서 헤어나오길 기대한다.                                     

김경원 기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