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받은 레포트, 2년 전 제출했던 논문까지 졸업심사 통과

2월에 졸업한 ㄱ씨는 며칠전, 우편으로 도착한 성적표를 받았다. ㄱ씨는 성적표에서 졸업논문이 최종적으로 통과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ㄱ씨의 졸업논문은 그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리포트를 조금 손질하여 제출한 것이다.

ㄴ씨에게도 졸업논문은 골칫거리였다. 마지막 학기를 취업 준비로 바쁘게 보냈던 ㄴ씨는 2년 전 친구가 썼던 논문을 이름만 바꿔 제출했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그 역시 오는 2월에 졸업할 예정이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대충대충

우리 학교 전체 65개 학과 중 졸업대상자에게 졸업논문을 요구하는 학과는 26개다. 이들 학과 중 이번학기 졸업논문심사에서 최종적으로 논문이 통과되지 못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논문심사에서 1차 부적격 판정을 받은 학생은 전체의 10%미만이었고, 이 중 상당수는 논문 분량이나 형식을 맞추지 못한 경우였다. 논문의 주제나 내용 때문에 통과되지 못한 학생은 극히 드물었다. 

졸업논문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송기정(불문학 전공)교수는 “대학을 마치면서 논문을 써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지금처럼 시행된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취업 준비 때문에 논문에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송 교수는 “졸업논문제도를 강화하려면 단지 논문을 내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 아니라 학점을 받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학기에 졸업논문이 통과된 김태은(불문.03)씨는 “교수님께서 논문 지도를 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님께 부탁드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학생 입장에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학교에서 지도교수가 학생들의 졸업논문을 지도하는 학과는 약학과를 비롯한 소수뿐이다. 정재서(중문과 전공)교수는 “한 교수가 많은 학생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지도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논문과 졸업시험을 택일해서 진짜 원하는 학생만 쓰도록 하면 학생 수가 적어서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문 쓰기와 심사의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도를 바꾼 학과도 있다. 정치외교학과는 2005년 2월 졸업생부터 졸업시험을 보는 것으로 제도를 변경했다. 심리학과도 2002년 2월 졸업생을 시작으로 졸업시험이 실시됐다.

황경자 명예교수(불어불문학과)는 “졸업논문제도는 학생들이 자주적인 연구 능력을 발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전공분야의 성격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졸업논문제도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인문학 전공은 시험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졸업 논문을 잘 쓸 수 있도록 유도 혹은 선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학 교육”이라고 말했다.

△졸업논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체

약학과에서는 3학년 2학기말에 학생이 원하는 졸업논문연구 분야에 맞춰 각 학생별로 교수를 배정한다. 교수 1인당 5-6명의 학생이 배정된다. 각 교수들은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실험연구’조와 ‘문헌조사연구’조로 분류한다. 실험연구는 방학기간에 이뤄지고, 문헌조사연구는 1년간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이상국 교수(약학과)는 “논문지도가 2가지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5-6명에 대한 지도에 큰 무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에 문헌조사연구에 참여했던 강보희(약학.04)씨는 “논문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찾는 방법을 배웠다”며 “힘들었지만, 논문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 이었다”고 말했다.

경영학과는 2004년 2월에 ‘경영정책’ 강의가 개설된 이후, 졸업논문대신 ‘강의 감상문’을 쓰도록 하고 있다. 김정권 교수(경영학과)는 “이론과 실무를 접목시킨 과목으로 학생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졸업논문을 폐지한 배경에 대해 김 교수는 “학부생이 논문을 쓰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학생들이 경영학을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문헌정보학과는 2000년부터 도서관 실습을 하고 실습일지를 제출하는 것으로 제도를 변경했다. 학생들은 3학년이나 4학년 여름방학 기간에 3주 동안 도서관에서 실습을 한다. 그 기간 동안 실습일지를 매일 써야한다. 정동열 교수(문헌정보학과)는 “도서관 실습이 도움이 많이 된다는 졸업생들의 의견도 있어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윤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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