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둘러싼 권력, 명분 그리고 정치학
 -정독실 폐지 문제에 대하여

지난 주에 대학원학생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독실을 이용하는 대학원생인데, 로스쿨 때문에 정독실이 없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하는 전화였다. 그 분은 좀 흥분하셔서는 학부학생회랑 대학원학생회랑 연계해서 같이 로스쿨이 도서관 5층 전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어떤 분은 대학원사물함 열쇠를 반납하러 오셔서는 이제 정독실이 없어져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도서관측에서는 대학원 정독실이 없어지는 것이 로스쿨 때문이라기보다는, 도서관의 서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중앙도서관은 장서가 100만권 정도 보관하도록 설계되었는데, 현재 장서가 150만권이 넘기 때문에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독실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도 서고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로스쿨에게 도서관 5층 전체를 사용하도록 양보하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정독실이 없어지는 것이 로스쿨 때문은 아니라는 도서관측의 답변은 어쩐지 궁색해보인다.

사실 5층 열람실이 없어진다는 것은 단지 대학원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부생들 또한 공부할 공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이화인 전체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화여대가 로스쿨에 선정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로스쿨 유치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왜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도서관 공간의 양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좀 더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로스쿨같은 소위 경쟁력있는 곳만을 지원함에 따라 학과 간의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도서관측에서는 서울 시내 어느 대학에서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해서 지정좌석을 주는 학교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정독실 이용률이 낮기 때문에 정독실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꼭 중앙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연구실 내에 자기 좌석이 있다면 대학원생들이 굳이 정독실을 고집할까? 서울 시내의 다른 대학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충분히 연구실이 주어지기 때문에, 굳이 논문을 쓰기 위해 지정석을 따로 달라고 구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현재 3천여명이나 되는 대학원생의 숫자에 비해 배정된 공간은 턱없이 작다. 계속해서 전문대학원을 신설해서 대학원생의 숫자를 늘리고, 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등록금 인상률로 전국 1위의 등록금을 자랑하고 있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들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연구 중심의 대학을 내세우는 이화에서 1학기에 5백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원생들이 맘 놓고 연구할만한 내 자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요구일까?

대학원학생회장 이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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