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이 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사람들이 “이제 너도 어른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때면 마음이 납처럼 무거워진다. “아직 전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라고 애처롭게 소리쳐보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 우울, 그리고 세상과 공존하기’라는 주제로 22일(목)오후3시30분 학생문화관 소극장에서 김혜남 정신분석전문의가 강연을 했다. 김혜남 씨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의 저자다. 다음은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어른, 자신의 짐을 지는 사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발달하고 성숙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른으로써 50~60여 년 이상을 산다. 인생의 3분의2 이상을 어른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어른들은 아이 같은 면을 여전히 갖고 있다. 단지 아이는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충족되어야한다는 원칙을 따르는 반면에 어른은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 즉 자신의 욕구를 현실과 타협한다. 한마디로 어른은 ‘자신의 짐을 자신이 들고 가는 사람’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상실의 고통과 두려움
삶은 상실의 연속이다. ‘엄마의 자궁 상실-엄마의 품과 젖가슴의 상실-행복한 아동기의 상실-젊음의 상실-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죽음’의 순으로 우리는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슬픈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실망과 우울의 시기
속물화되는 우리 어른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선택할 것이 많다는 것은 저주 받은 것과 같다. 내가 선택한 것보다 남이 선택한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항상 남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를 한다는 것은 항상 누군가는 실패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자신의 중요성과 꿈을 발견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또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속물화된다. 우리는 속물이 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어른으로써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부와 명예를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피터팬신드롬
피터팬처럼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지만 현실의 피터팬은 고통스럽다. 계속 어린아이로 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또 피터팬은 엄마로부터 다시 버림받을까봐 항상 두려워하기 때문에 결코 편하지 않다. 미국의 심리학자 댄 카일러가 Man-Child(어른아이)를 ‘피터팬신드롬’이라 명명했다. ‘피터팬신드롬'이라 불리는사람들은 무책임하고, 항상 불안하고 외로워하며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 또 환상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며 맹목적인 이상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서로에 대한 불신·불확실한 미래·개인의 무력감 등 때문에 피터팬 신드롬이 증가하고 있다.

△어른의 삶은 슬프기만 한 걸까?
슬픔은 인생의 한 조건이다. 떠나간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들어와 나의 일부분이 된다. 완벽한 보호처인 어머니의 자궁과 젖가슴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서의 ‘나’가 된다. 우리는 어른의 삶을 살면서 상실의 강을 제대로 건널 필요가 있다.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받아들이고, 간직하고, 떠나야 한다. 나 역시 7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진행성 신경계통질환에 걸려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고 급기야 꿈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분노·슬픔·좌절의 감정을 느끼며 침대에서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어느 날 ‘내가 미래가 조금 불확실해진 것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잃어버리면 하나를 얻게 되는 법이다. 나는 건강을 조금 잃었지만, 책을 쓰면서 나의 아픔을 치유한 셈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느낄 때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상처가 없으면 성장할 수가 없다. ‘제2의 성장통’을 겪어야만 우리는 온전한 어른이 된다. 흉터가 크면 클수록 큰 병을 이겨냈다는 징표이기 때문에 오히려 창피해 말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을 대비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인생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
사랑을 꼭 해보자. 사랑은 상대에게 자신을 연다는 것이며,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부끄러운 부분까지 열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받아들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과거에 상처받아 멈추었던 성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송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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