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잔디’와 ‘하늘’·‘별’이 있다. 바로 순 한글 이름의 학생들이다.

성실히(문헌정보·04)씨는 “성실히입니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면 “성이 뭔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김한글(성악·05)씨의 이름은 한글 날 태어나서 붙여졌다. 그는 “이름이 특별하다 보니 나 자신도 특별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몽의 배경인 ‘봄’으로 이름을 갖게 된 윤봄(식영·07)씨는 어렸을 때 ‘봄봄봄 봄이왔어요’라는 노래가사로 놀림도 많이 받았다.

△ 한 번 듣고도 머릿속에 쏙 들어오는 한글 이름
한글 이름의 가장 큰 장점은 흔하지 않아서 기억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실히(문헌정보·04)씨는 “중학교 때 ‘성실히 학생 교무실로 오세요’라는 교내방송을 듣고 유치원 친구가 찾아왔던 적도 있었다”며 “내 이름은 동창들이 잘 잊어버리지 않아 먼저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싸이월드 인물검색에 ‘성실히’를 입력하면 한 명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개팅 후에 이름을 검색해서 미니홈피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두리(문헌정보·05)씨 역시 독특한 이름 덕에 미니홈피로 동창들이 찾아오곤 한다. “싸이월드에 ‘노두리’라고 등록된 이름은 저 뿐이라 친구들이 알아서 찾아오더라고요.”

한글 이름을 사용하면 이름의 뜻을 묻는 등 초면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박다미로(섬유예술·05)씨는 “카톨릭 세례명이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며 “이름의 뜻을 물으면서 한번 더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 한문 이름만 작성 가능한 서류·놀림 등 불편할 때도 있어
한글 이름이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아직 한문 이름에 비해 보편화돼지 못했다. 최예슬(국문·06)씨는“한 번은 공적인 서류를 작성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름란에 한문만 쓸 수 있게 돼있어서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최씨가 ‘한문으로 이름을 쓸 수 없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한문을 쓸 줄 몰라서 이름이 한글이라고 핑계대는 것 아니냐’고 놀리기도 한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김방글(법학·02)씨는 “취업할 때 이름 때문에 첫 인상이 가벼워보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자랑스러운 한글 이름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놀림대상 1호가 되기도 했다. 한글 이름은 한자 이름과 달리 별명을 붙이기 쉽다. 중·고등학교 때는 이름의 첫 글자‘방’을 따서 만들어진 ‘방글라데시’·‘방구’등의 별명때문에 울었던 적도 많았다. 대학 입학한 후에도 주위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개명을 권유했다. 김씨는 “평소에 웃고 살라고 아버지가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이니 절대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 한글 이름이 ‘한글 사랑’으로
“학생 이름 뜻이 뭔가?” 대형 강의실에서 첫 수업이 있던 날 김여울(언홍영·07)씨가 교수님께 받았던 질문이다. “얕고 좁은 폭으로 세차게 흘러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여울처럼, 멈추지 말고 힘차게 살라는 뜻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물을 때마다 김씨는 자신있게 답한다. 그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통해 ‘여울’의 뜻을 알게 된 경우도 많았다”며 “이름으로 나도 알리고 한글도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히려 한글 이름이 한문 이름보다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가람(사회학·06)씨 역시 한글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지원서에 이름 옆에 한문을 쓰는 부분 있다”며 “한글 사용이 조선후기에 멈춰있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이름을 짓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한글 이름이 더 보편화되고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생 불리는 이름은 인생의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이기쁨(초교·07)씨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에 맞도록 기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며 “이름이 살아가는데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말했다. 정한결(법학·06)씨 역시 “이름처럼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아 기자 이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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