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환경지킴이 이치수씨


19일(수) 오전 7시, 오늘도 그는 불법주차 차량 통제, 벽보 떼기 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대신동부터 이대 앞까지 걷는 동안 마른 손은 먼지로 얼룩진다. 쓰레기봉지도 혼자 들기 버거울만큼 가득 찼다. 떼어낸 벽보도 손에 한가득 이다. “그래도 동네 거리 깨끗해지는 모습 보면 흐뭇하죠, 뭐” 깊게 패인 주름을 따라 땀이 흐른다. 대신동 일대 거리환경지킴이 이치수(서울시 서대문구·78)씨, 그가 ‘이대 앞 찾고 싶은 거리’를 청소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오전 일을 막 끝낸 그를 정문에서 만났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2001년 3월에 시작된 ‘거리환경지킴이’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그가 서대문구 노인회의 총무였던 시절 서대문구청에서 ‘거리환경지킴이’를 모집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용돈도 벌고, 활동하는 게 좋아서 친구들과 함께 지원했지요” 그를 포함해 총 네 명으로 구성된 ‘거리환경지킴이’들은 일주일에 두번, 하루에 네 시간 동안 대신동과 우리 학교 일대에서 일한다. 그는 서대문구청으로부터 하루에 약 7천 원의 보수를 받는다. 일은 ‘벽보 떼기’나 ‘바닥 쓸기’ 등 주로 거리 외관 청소다. 그 외에도 가출 청소년을 인도하거나 차량 통제도 도맡아서 한다. 특별히 이치수씨는 ‘거리환경지킴이’일로 재작년 서울시장으로부터 ‘모범노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우리 학교 앞을 청소했다는 그는 “이대생들이 꼭 손녀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배꽃나래길, 바람산길…. 길이름도 예쁘죠? 옛날보다 얼마나 많이 깨끗해졌는지. 이제는 보람을 느끼면서 일합니다” 이제 ‘거리환경지킴이’ 일은 그의 낙이다. 등산하기·오토바이나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는 그는 타고난 활동가다. 젊은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다는 그는 6·25 당시 수영으로 한강을 건너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이씨는 “전쟁 통에 이렇게 됐어요”라며 바짓단을 걷어올린다. 그의 다리는 뒤쪽으로 크게 휘어져 있었다. 그는 전쟁 당시 양다리와 한쪽 팔, 치아 등에 부상을 당한 상이군인이다. 아픈 다리로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몸이 아파서 힘든 것보다도 학생들이 무시하거나 욕할 때가 힘에 겨워요”라고 말했다.

차량 통제를 하거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들에게 충고할 때 오히려 덤비는 학생도 있었다. “나이 먹어서 청소하니까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이 조금만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그럴 때마다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아픔을 달랜다.“울창했던 나무, 이화교…. 그때 추억만으로 행복해져요”신촌에서 51년 동안 살았다는 그는 우리 학교의 변화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뷰 끝 무렵 많은 학생이 정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등교하는 학생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옛날보다 요즘에 학생들이 많이 차가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 앞 찾고 싶은 거리’의 ‘보이지 않는 손’ 이치수, 그가 있기에 학교 앞 거리가 한층 더 빛나고 있다.


이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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