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두툼한 책을 안은 학생이 조심스레 교수 연구실의 문을 연다. 한인택 교수(정치외교학과)와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 타이러힐(Tyler Hill)씨는 연구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간단한 다과류와 전문 서적이 올려져 있다. 타이러힐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필기도구와 책을 꺼낸다.

그는 교수에게 지난 시간 과제로 읽어온 ‘Korean Culture’의 책 내용을 질문한다. 수업의 주제는 ‘한국 정치의 기록이 실제와 다른 이유’다. 한 교수와 타이러힐씨는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30분 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이는 지난 9월19일(수) 이화­포스코관 연구동 309호에서 진행된 ‘Directed Independent Studies(독립연구)’의 수업 모습이다. 그들은 한 학기 동안 ‘한국의 정치 역사’에 관해 조사·연구 할 계획이다.

우리 학교는 국내 대학 최초이자 유일하게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독립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독립연구는 교환학생이 원하는 주제의 영어 강의가 개설되지 않았을 때 전공 교수와 개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과목이다. 국제교류처는 교환학생 유치를 위해 2000년도부터 독립연구를 시작했다. 독립연구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한 학기에 3학점을 이수한다. 학기 말에는 독립연구의 주제로 소논문을 제출해야 학점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학기에는 총 13개의 독립연구가 진행된다. 주제는 ‘중국과 한국의 경제 비교’·‘한국 영화의 발전과 한국적 정체성의 표현’등으로 10개의 독립연구에서 한국의 사회·문화를 다루고있다. 독립연구에 참여하는 학생은 중국 학생들이 3명으로 가장 많으며 미국·일본·스웨덴 등 다양하다. 국제교류처는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반 전부터 교환학생에게 독립 연구 신청 이메일을 개별적으로 발송한다. 이번 학기 신청 마감일까지 18명의 학생이 연구주제와 선행 학습자료 등을 보냈다. 그 중 국제교류처의 심사를 거쳐 연구에 대한 계획과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된 5명의 학생은 독립연구에서 제외됐다.

한인택 교수는 지난 학기에도 벨기에 학생과 ‘Collective memory&Art’라는 주제로 독립연구를 했다. 그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와서 독립연구를 하는 학생들은 해결하고자 하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독립연구의 개별적 수업 방식은 이러한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데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수업을 준비해오는 학생의 열의에 따라 연구의 질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온 Hedwig Pottag(헤드윅 포타그)학생은 채현경 교수(작곡과)와 함께 ‘지하철 1호선’이라는 뮤지컬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포타그씨는 독일의 ‘폴거 루드비히’라는 원작을 번안한 ‘지하철 1호선’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했다. 독일 원작인 ‘지하철 1호선’은 호응을 얻으며 1994년도부터 지금까지 국내에서 장기 공연되고 있다. 현장조사를 위해 포타그씨는 채 교수와 함께 ‘지하철 1호선’을 보러 갔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뮤지컬 감독 김민기씨와 인터뷰도 했다. 동행한 채 교수는 옆에서 통역을 도왔다.

채현경 교수는 지난 학기에도 일본에서 온 대학원생과 ‘잡색’에 관해 연구했다. 잡색은 농악에서 정식 구성원은 아니지만 흥을 돋우기 위해 등장하는 사람이다. 채현경 교수는 “학생이 스스로 굿판이 열리는 전주에 다녀오기도 하고 우리 학교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활동도 하며 적극적으로 연구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도 소홀할 수 있는 문화까지 열성적으로 연구하는 외국 학생들을 보면 기특하다”며 “독립연구가 교수의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리우퀴징(Liu Qijing)은 ‘한국 방송 매체의 운영방식’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독립 연구를 신청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을 편집하는 ‘Quark Express’ 프로그램을 다룬다. 지도 교수는 신문 편집에 필요한 기본적인 이론과 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설명한다. 학생 옆에 앉아서 컴퓨터 실습을 보이며 직접 신문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리우퀴징씨는 “특정 교수의 개인 지도를 받아 학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중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이화여대의 독립연구를 추천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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