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 이대학보
  • 승인 20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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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짜’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어쩌면 김혜수가 도박단속 경찰에게 잡혀가며 이렇게 일갈하는 장면일 것이다.


‘왜 이래? 나 이래봬도 이대 나온 여자야!’

최근 신정아씨의 가짜학위 파문이 커지면서, 대학 나왔다던 유명인들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일들의 기저에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만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사회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나 학위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준다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이 강할수록 가짜에 대한 욕망도 강한 법이다. 마치 명품을 걸쳐야만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편견이 짝퉁 명품을 양산토록 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신정아씨가 명품을 즐겨 입었다는 것이 한편으로 이해되기도 한다.(삭제)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명품을 입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비록 싸구려라 할지라도 그가 입음으로 인해 명품이 되는 그런 [능력==> 자신감과 당당함](교체)일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이자 현재 CEO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연설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대학 졸업식에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는 대학을 잠시 다녔지만 졸업하지 못한다. 그의 생모는 대학원에 다니던 젊은 미혼모였다. 그녀는 아들을 입양시킬 때 조건으로 그 아들이 장성하면 꼭 대학을 보내라는 각서를 받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양부모는 잡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약속대로 온 재산을 털어 그를 리드대학에 보낸다. 한 학기를 다닌 잡스는 양부모의 경제적 처지를 생각하며(면)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보고 학교를 중퇴한다. 대신 그는 학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과목들을 청강하기 시작한다. 그 과목들 중에는 중세의 다양한 서체를 배우는 서체학(calligraphy)도 있었는데 도무지 아무 쓸모없을 것 같던 그 과목은 후에 애플 컴퓨터를 유명하게 만든 다양한 폰트 제작의 배경 지식이 된다. 잡스는 학교를 중퇴한 것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컴퓨터 분야에서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던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로) 어쩌면[삭제] 영국의[추가] 튜링(Alan Turing)일 것이다(을 들 수 있다[교체]). 컴퓨터가 등장하기 10여 년 전 이미 컴퓨터의 수학적 모델을 완성했던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기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기 위한 비밀 국가기관에 선발되어 암호해독용 전자 컴퓨터를 완성한다. 그 컴퓨터는 현재 최초 컴퓨터라 인정받는 에니악에 비해 월등한 기능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은 처칠이 그 기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전후에도 한 동안 이를 비밀에 붙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튜링은 1952년 동성애 행각이 발각되어 체포되고 만다. 당시 동성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사법당국에서는 그를 투옥하는 대신 새로 실험되고 있던 호르몬 요법의 마루타가 되는 조건으로 그를 요양시설에 감금한다. 여성 호르몬을 계속 투약하는 과정에서 가슴 확장 등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청산가리를 섞은 사과를 한입 깨물어 먹고 자살한다. 자신을 억지로 여성으로 만들려는 사회에 대해 그는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항의와 조소를 표현한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그걸 원한다면 가장 순수한 백설공주의 모습으로 사라져 주겠다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는 사과모양을 로고로 정했다. 그런데 그 사과는 단순히 둥글지 않고 거기에는 한 입 깨물어 먹은 자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낸 한 젊은이가 오래 전 사회적 편견 때문에 꿈을 접어버린 한 비운의 천재에게 바치는 헌정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특히 사회적 편견이 심한 것 같다. 어떤 일에서든 ‘똑같음’은 편견을 만들어내는 주범이다. 똑같은 교육제도에서 판박이처럼 생산되는 학생들이나 단일민족이라는 동질감, 또는 군대의 유니폼 등등.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의 타파에 ‘이대 나온 여자’들이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