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용 총장, 유누스 총재 협동 인터뷰

2006년,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저희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평화가 빈곤과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명제를 지지하는 중요한 선언이었습니다. 분명, 빈곤은 평화에 대한 위협입니다. 이는 세계의 소득 분포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세계 소득의 94%를 세계인구의 40%가 차지하지만 세계인구의 60%는 세계 소득의 단지 6%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로 살아갑니다. 이런 식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 빈곤에 의한 인권 부인
평화는 인간적으로, 즉 광범위한 사회·정치·경제적 방식으로 이해돼야 합니다. 평화는 부당한 경제·사회·정치 질서와 민주주의의 부재·환경파괴와 인권의 부재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빈곤은 어떠한 인권도 없는 상태입니다. 비참한 빈곤이 낳은 좌절·적대감과 분노로는 어떤 사회도 평화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안정적인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기회를 제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 즉 빈곤층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난 30년간 우리가 헌신해온 작업의 중심입니다.

▲ 그라민 은행
제가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책 입안자나 연구자로서가 아니었습니다. 빈곤이 항상 제 가까이에 있었고 빈곤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4년, 저는 방글라데시의 끔찍한 기아를 뒤로 하고 대학 강의실에서 경제학의 고상한 이론들을 가르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삶을 짓이기는 배고픔과 빈곤의 엄연한 현실 속에서 이론들의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제 이웃들의 삶이, 설령 단 한 사람일지라도 하루 만이라도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계 때문에 아주 작은 돈 한 닢을 벌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을의 한 여인이 그녀가 생산하는 모든 물품을 원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조건에, 고리대금업자로부터 1 달러도 안 되는 돈을 빌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이 일이 노예를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우리 대학 바로 옆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고리대금업의 피해자들의 명단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완성된 명단에는 42명의 피해자가 기록됐고 피해 금액은 총 27달러였습니다. 저는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피해자들을 고리대금업자들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기 위해 제 주머니에서 27달러를 내놓았습니다. 이 작은 행동으로도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 일에 더욱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돈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그토록 행복하게 할 수 있는데, 그 일에 더욱 매진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후로 저는 계속 그러한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학 구내 은행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하도록 설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은행이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신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수 개월에 걸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제가 직접 대출의 보증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대출이 이루어졌을 때, 저는 그 결과에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항상 제 날짜에 갚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존 은행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때 저는 빈곤층을 위한 은행을 창설하기로 결심했고 1983년에 결국 이뤄냈습니다. 저는 그 은행의 명칭을 그라민 은행, 즉 마을 은행으로 정했습니다.
오늘날,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의 78,659개 마을 720만 명의 빈곤계층에게 대출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97%는 여성입니다. 그라민 은행은 무담보의 소득창출 대출(income generating loan)·주택대출·학자금대출과 소기업대출(micro-enterprise loan), 그리고 좋은 조건의 다양한 저축상품과 연금과 보험 상품을 빈곤가정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1984년에 도입된 주택대출은 647,771개의 주택을 짓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들 주택의 법적 소유권은 대출 여성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여성에게 주목한 것은 여성에 대한 대출이 가정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은행이 지금까지 빌려준 대출 총액은 63억 달러이며, 상환율은 98.61% 입니다. 그라민 은행은 항상 이익을 냅니다. 재정적으로 자립한 상태이고 1995년 이후 기부금을 전혀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라민 은행의 예탁액과 순자산은 현재 대출액의 156%에 달합니다. 은행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대출고객의 64%가 이미 빈곤선을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라민 은행의 구상은 방글라데시의 작은 마을 조브라(Jobra)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가 현재는 거의 모든 나라에 그라민 은행 방식의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제2세대 그라민 은행
이 사업을 시작한지 이제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돈을 빌려간 분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하고자 그 분들의 자녀들을 계속 관찰해왔습니다. 대출을 받은 여성들은 항상 자녀들을 최우선시 했습니다. 그들은 16개의 결심(Sixteen Decisions)를 만들어 이를 지켜왔는데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은 꼭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용기를 얻었고 오래지 않아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 중의 다수는 학급에서 상위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축하하고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설립했습니다. 그라민 은행은 현재 매년 3만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그 학생들 중 다수가 대학에 진학하여 의사·엔지니어·대학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학자금 대출 제도를 마련한 것은 그라민의 학생들이 대학교육을 이수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박사학위를 이수한 학생도 있습니다. 16,194명의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로 학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매년 7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새로 대출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이 세대는 자기 가족을 빈곤의 손아귀에서 구해낼 수 있도록 완전히 준비를 갖춘 첫 세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빈곤 지속의 역사를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 사회기업으로서의 그라민 은행
이윤 극대화를 꾀하는 기업들도 기업의 소유권 전체나 대부분을 빈곤층에게 넘겨줌으로써 사회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두 번째 종류의 사회기업입니다. 그라민 은행은 바로 이러한 방식의 사회기업에 속합니다. 빈곤층이 소유주이기 때문입니다.
빈곤층은 기부자로부터 주식을 증여받거나, 아니면 자기 돈으로 직접 주식을 매입할 수 있습니다. 대출자들은 자기 돈으로 그라민 은행의 주식을 사고 이 주식은 대출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양도될 수 없습니다. 은행의 일상적인 운영업무는 위탁한 전문팀에서 맡습니다.
양자적 다자적 기부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회기업을 쉽게 세울 수 있습니다. 기부자가 수혜자에게 교량 건설을 위해 대출을 하거나 교부금을 제공하는 대신 지역 빈곤층 소유의 ‘교량 회사’를 건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 운영의 책임은 위탁 운영회사에 맡길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이윤은 배당금의 형태로 지역 빈곤층에게 지급되고 교량을 추가로 건설하는 데에 사용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도로, 고속도로, 공항, 항구, 수도/가스/전력 회사들과 같은 인프라 사업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라민에서는 첫 번째 종류의 사회기업을 2곳 창설했습니다. 하나는 요거트 공장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강화 요거트를 생산하는 곳으로 다농(Danone)사와의 합작 사업입니다. 이 회사는 방글라데시의 영양실조 어린이 모두가 강화 요거트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사업을 확대할 것입니다. 또 다른 업체는 안과병원 체인입니다. 체인 병원은 연간 평균적으로 1만 건의 백내장 수술을 하며 수술비용은 빈부에 따라 다르게 책정됩니다.



▲ 빈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저는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빈곤은 우리가 설계한 경제 사회 체제와 그 체제를 구성하는 제도와 개념,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정책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빈곤이 나타난 것은,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전제에 기초하여 이론의 틀을 세우고, 사업, 신용도, 기업정신, 고용 등의 개념을 너무 편협하게 수립하거나 빈곤층을 배제하는 금융기관과 같이 불완전한 기관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빈곤이 나타난 것은 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개념 단계에서 이미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믿기만 한다면,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앞으로 빈곤 없는 세상이 되면 빈곤은 빈곤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빈곤 박물관을 견학하면 인간들이 경험해야 했던 그 비참함과 당혹스러움에 진저리를 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비인간적인 상태가 그토록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되도록 묵인한 선조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온 세상이 더욱 행복해지는데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 발휘할 기회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으나 대다수는 평생 동안 타고난 놀라운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전혀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생을 마감할 때 그 잠재력도 함께 묻히고 이 세상은 그들의 능력과 기여를 빼앗깁니다.
그라민은 저에게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인간이 배고픔과 가난의 비참함을 겪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난한 사람들은 분재나무와 같습니다. 큰 나무의 가장 좋은 씨앗을 골라 화분에 심으면, 큰 나무를 꼭 닮은 몇 인치 크기의 나무가 자랍니다. 씨앗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흙이 너무 부족해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분재나무입니다. 그들의 본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사회가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좋은 토대가 되어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을 빈곤에서 구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면 가난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모든 인간이 자신의 에너지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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