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안나, 나이는 서른 셋, 이 도시에 살고 있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무대 위 군중 속에 섞인 세 명의 안나가 외쳤다. 그들은 지친 표정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이 움직였다. 빠르게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 속에서 불이 꺼지고, 안나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13일(목)~15일(토) 생활관 소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은 ‘안나’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노처녀에 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은 유머가 가득한 대사와 과장된 배우의 몸짓으로 상연내내 관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눈으로 쫓다보면 코미디 뒤에 숨어있는 그로테스크함을 발견하게 된다. 연극은 등장인물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첫번째 등장하는 ‘백안나’는 발레를 좋아하는 학습지 교사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주변 환경은 안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혼은 해야지.” 때가 되면 할 거라며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가진 안나에게 친구들은 쏘아붙인다. “그건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이야!” 곳곳에서 들리는 ‘아줌마’ 소리와 성형권유는 안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조안나’는 영어학원을 다니는 카피라이터다. 그는 영어학원에서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사랑을 고백하는 안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다.

 “사랑? 난 피자처럼 한 조각 한 조각 다 떼 줘서 남은 게 없다.” 사랑 없는 삶에 지친 안나는 춘천에서 상경한 첫사랑 오빠를 쫓아 춘천행 기차를 타러 간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이안나’는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그는 극장에 갔다가 언제부터인가 웃음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회의 장면에서 ‘미혼 여성의 낙태’를 주제로 기획기사를 논의하던 중, 안나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 역시 미혼모가 될 상황에 놓였을 때, 사회적 편견을 견딜 수 없어 낙태를 결심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후 그는 지워버린 아이에 대한 죄악감에 시달렸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안나들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백안나는 결혼을 부추기는 주위사람들에게 “지금 이대로가 좋다”며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조안나는 첫사랑은 첫사랑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상경한 오빠와 헤어진다. 이안나는 꿈을 통해 낙태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죄악감에서 해방된다. 극중 도시의 삶은 계속되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그들은 이제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도시녀의 칠거지악’은 브레히트 ‘소시민의 칠거지악’을 바탕으로 극단 서울공장 단원들이 공동 재구성한 창작 연극이다. 이 연극은 2006년 밀양 연극제에서 작품상·연출상·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공연은 사회대 연극 동아리 ‘투명한 사람들’이 7월부터 2달 반 동안 준비해 무대에 올렸다.
김기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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