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일(목) 우리 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문을 열었다. 수시 5.6:1·정시 2.18: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76명의 의전원 1기생 중 현재 75명이 꿈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자가 4일(화)·5일(수) 이대목동병원 내 의학관 B동 707호를 찾아 그들의 치열한 일주일을 들여다봤다.

△ 하루 24시간 공부, 주말도 반납한 예비 히포크라데스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는 서정화(의학과·07)씨. 입학 후 그는 마치 고3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8시∼10시는 어김없이 시험을 치른다. 시험은 한 주 동안 배운 내용을 범위로 하지만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시험범위 내의 강의록을 출력하면 어김없이 그 두께가 영어사전만 하다. 시험이 끝난 직후 바로 2시간 동안 오전수업이 진행된다. 1시간의 점심시간 후에는 또 오후 수업이 이어진다. “이론 수업은 오후3시에 끝나지만, 해부나 실습수업이 잡힌 날에는 오후5시를 넘기는 게 다 반사죠.” 수업을 모두 끝마치면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해야 한다. 서 씨는 “당일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것도 벅찬데, 하루라도 학습을 미루면 곧장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학기 그들이 배운 전공필수 과목은 분자와 세포·발생과 해부·구조와 기능· PDS(환자­의사­사회)·ICM(임상 입문과정)의 5과목이다. 하지만 ‘분자와 세포’는 다시 생화학·유전정보학·병리학으로, ‘발생과 해부’는 다시 발생학·해부학·영상의학의 세부과목으로 나뉜다. 또 각 과목에 실습이 포함됨을 고려하면 한 학기에 10과목 이상을 소화해 낸 셈이다. 자연히 학생 대부분은 방과 후에도 강의실·의대도서관 등에 남아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이사라(의학과·07)씨는 “매주 월요일에 보는 시험이 중간·기말고사와 동일한 비율로 성적에 반영되니, 잠시도 흐트러질 수 없다”며 “교실에는 새벽까지 공부하는 학생이 꾸준히 있고, 학교에서 살다싶이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의학관 B동을 담당하고 있는 경비원 강대호씨는 “야간 근무가 있는 날, 오전12시·3시·5시 세 차례 순찰할 때마다 교실에는 항상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모든 시험의 결과는 열흘 내에 성적처리가 완료돼 강의실 내 게시판에 붙여진다. 각자 정한 암호가 실명 대신 적혀 있지만 시험결과가 나오는 날은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권원경(의학과·07)씨는 “실명이 안나와도 성적이 나쁘면 스스로에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의학공부는 암기분량이 많아 교수님들은 무엇보다 ‘성실성’을 강조하신다”고 덧붙였다.

△ 생명을 다룰 막중한 임무, 이론·실습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다

5일(수) 오후1시40분, ‘환자­의사­사회(PDS)’수업이 한창이다. 강단에는 하얀 가운 차림의 교수님이 서 있고, 책상에는 두꺼운 의학 서적들과 프린트한 강의록이 빼곡히 쌓여 있다. 75명의 의학도가 내뿜는 학구열로 강의실은 후끈하다.

10분의 짧은 휴식 후, ICM(임상 입문과정) 실습이 이어진다. 이날은 복부진단 실습의 첫날이다. 심기남 교수(내과학)가 미리 준비한 동영상 자료를 본 후, 학생들은 곧 10명씩 조를 나눠 실습에 들어간다. “타진(손으로 두드려 신체 내부를 진단하는 방법)을 해봤으니, 이번에는 촉진(손으로 만져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을 해보세요.” 교수님이 지시하자 수업자료를 뒤지고 동기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아직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촉진을 해본다. 김현정(의학과·07)씨는 “어제 학생 전부가 개인의 청진기를 받게 됐다”며 “이론공부만 할 때는 몰랐는데, 실습시간에 실험복을 입고 청진기를 직접 만져보니 내가 의학도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의전원 학생들은 대부분 1학기에 실시한 ‘해부학 실습’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꼽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들어 있는 해부학 실습은 6명씩 한 조를 이뤄 진행됐다. 실습에 앞서 시신을 기증한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간단한 묵념시간을 갖는다. 카데바(시신)을 제모하고 건조방지제를 바르고 잘 스며들도록 문지르면서 처음의 긴장감·공포감도 잦아들었다. 해부학 실습은 크게 가슴에서 시작해 배­골반­다리­팔­목­머리 순으로 진행됐다. 채송희(의학과·07)씨는 “머리·목 부분을 해부할 때는 복잡한 구조와 방대한 암기량에 압도돼 실습이 끝나면 눈물 한 방울이 뚝 흐르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영이(의학과·07)역시 “처음에는 피하지방을 걷는 것도 조심스러워했지만 중간고사를 칠 무렵에는 제법 능숙해졌다”며 “의학도가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공부”라고 말했다.

△ 학부전공·사회경험 따라 각양각색 75명, “서로에게서 희망을 본다”

학부전공에 제한이 없는 의학전문대 특성상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도, 졸업 후 하고 싶은 일도 천차만별이다. 현재 의전원 자치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윤진희(의학과·07)씨는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01학번)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에 입학했다. 의사는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인문학적 사고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고령합격자(44세)로 입학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영이(의학과·07)씨는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관두고 의전대에 도전했다. “어느 정도 완급조절이 있던 기자과 달리 지금의 생활이 훨씬 타이트하다”면서도 “기자 시절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4살·9살 두 아이를 둔 최은영씨·존스홉킨스 대 재학 중 음악대학(오르간) 석사과정과 프르ㅣ메드과정(pre-med·의과대학원진학 예비과정)을 동시에 이수한 양내리씨·법의학자를 꿈꾸는 김민영씨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75명의 학생이 이화 의전원에 모였다. 이들은 모두 내일의 히포크라테스를 꿈꾸며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의전대 1기 학생들의 하루. 75명의 치열한 하루는 매순간 불꽃처럼 빛난다. 자치위원회 학습부장을 맡고 있는 임지연(의학과·07)씨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학생 스스로 의전원에 입학했기에 힘든 과정도 버틸 수 있다”며 “의학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계획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고, 또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이홍수 교수(가정의학과)는 “의전원 학생들은 사회생활 경험을 쌓고 입학한 학생들이라 그런지 성취동기·집중력이 매우 강하다”며 “1기 학생인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장차 전문성을 지닌 의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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