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학기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이화인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한바탕 ‘클릭 전쟁’을 치른다. 10여 분간의 사투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린다. 계획대로 수강신청이 되지 않은 학생들은 미완성 시간표를 들고 개강을 기다린다.

수강신청 대란은 이화인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반면 한 달 전부터 수강계획서를 만들고 느긋하게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본사는 우리 학교 최미희(가명, 경제·4) 학생과 UC Berkeley에 재학 중인 홍지영(Chemistry·4) 학생의 ‘수강신청 체험기’를 비교해봤다.

△오전 9시 0분 0초 시작 VS 수강신청 시간에 집착하는 학생 없어
8월14일 오전8시45분. 오전9시부터 시작되는 수강신청을 위해 최미희씨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영어Ⅱ’와 복수전공인 경영학 과목의 학수·분반번호를 미리 종이에 적어뒀다. 수천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수강 대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9시가 되자마자 제일 먼저 ‘영어Ⅱ’를 입력했다. ‘수강인원이 다 찼습니다’라는 알림 문구가 뜬다. 급한 마음에 나머지 경영학 3과목을 빠르게 입력해본다. 결과는 3과목 모두 실패. 최씨는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결국 예상에도 없었던 경영학 영어강의 두 과목을 ‘그냥’ 넣었다. 그는 “어차피 변경기간에 그나마 신청한 2과목도 변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하는 최씨는 복수전공을 이수하는데 필요한 최저 학점조차 채우지 못한 채 수강신청을 마감했다.

UC Berkeley대학의 수강신청은 여름 방학이 되기 한 달 전에 이뤄진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4월15일 오후2시. 오후1시부터 수강신청은 시작됐지만 홍지영씨는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다. 홍씨는 수업을 마치고 3시가 되기 전 기숙사로 들어와 수강신청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이렇게 여유로운 이유는 개인마다 수강신청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이 이뤄지기 한 달 전부터 학사정보관리 홈페이지에는 개별적인 수강신청 날짜와 시간이 공지된다. 수강신청 기간은 학년과 전공별로 나뉜 후 랜덤으로 지정된다. 수강신청 기간이 공지되면 전공 지도교수와 상담 가능한 시간을 맞춘다. 홍씨는 미리 올라온 강의계획서를 바탕으로 수강계획서를 짠 후 전공 지도 교수에게 제출하고 상담을 받는다. 그래야만 수강신청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는 입력번호를 알 수 있다. 전공 지도교수는 다음 학기 수업에 도움이 되는 과목 등을 추천해주고 학생들의 수강계획표를 바탕으로 전공과목의 수요조사도 한다.

UC Berkeley 대학의 수강신청은 ‘phase1’·‘phase2’로 총 2번에 걸쳐 진행된다. 첫 수강신청 때는 자신이 지정받은 시간의 24시간 내로 전공 또는 부·복수 전공과목을 신청한다. 24시간이 지나면 바로 ‘phase 2’가 시작된다. 이때는 강의시작 전까지 교양과목을 신청하거나 이미 신청한 과목을 변경할 수 있다. 홍씨는 “전공과목의 경우 수요조사가 이뤄진 상태에서 수강신청을 하기 때문에 원하는 수업을 못 듣는 학생은 극소수다”라며 “동시접속으로 인한 불편함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한 달 전부터 짜놓은 수강계획표대로 가을학기의 시간표를 완성했다.

△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클릭 VS 대기번호 받고 내 차례 기다린다
최씨는 수강신청을 하지 못한 ‘영어Ⅱ’과목 때문에 걱정이다. 다른 전공과목은 담당 교과목 교수님을 만나 ‘졸업생’이라는 사정을 말하면 대부분 수강을 허락해주신다. 그러나 졸업 필수 과목인 ‘영어Ⅱ’의 경우는 다르다. 교양영어실에서 강의 당 인원수를 제한해 뒀기 때문에 교수 재량으로 조정할 수 없다. 최씨는 교양영어실에 전화를 했지만 ‘졸업생을 대상으로 인원수를 늘릴 예정이니 변경기간에 다시 들어가 봐라’라는 답을 받았다. 그는 “‘변경기간 며칠 몇 시 몇 분에 들어가 보라’라는 정확한 답변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다. 최씨는 변경기간 내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만 한다.

UC Berkeley의 수강신청 홈페이지는 ‘phase1’때부터 개강 후 6주까지 매일 밤마다 업데이트가 된다. 강의 별로 수강 신청된 인원과 초과된 인원을 확인할 수 있다. 홍지영씨는 교양과목 ‘테니스’의 수강인원이 초과돼 ‘phase2’ 초반에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했다. 대신 25명이 정원인 수업의 4번 대기자로 ‘waitlist’에 등록됐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중 대기번호가 돌아와 수강할 수 있게 됐다. ‘waitlist’는 접수된 학생들이 철회를 할 때마다 대기하고 있는 학생 순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우리 학교 ‘영어Ⅱ’와 같은 졸업 필수 과목은 4학년을 우선으로 배려해준다. 대형 전공 강의의 경우 전체 정원의 절반은 반드시 4학년을 위해 개설해둔다. 25%는 기타 학년의 전공생, 나머지는 그 외 모든 학생들에게 자리가 할당된다.

‘튕기지 않는’ 수강신청과 수요조사를 통한 과목의 분반 조정 등은 이룰 수 없는 공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최미희씨는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원하는 시간표대로 수강신청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최씨에게 이번 학기는 ‘등록금 350만 원을 내면서 채플만 듣는 격’이 돼버렸다. 이화인에게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머나먼 이야기일까.

이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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