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과 결별한 제2노총 건설해야

 

  87년 7~8월 대투쟁 이후 성장해온 민주노조운동은 그때까지 어용과 무기력이 횡행했던 이땅의 노동조합운동을 운동본연의 이념·조직·투쟁의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는 노동자대중의 자주적·민주적 조직들은 기존 노동악법과 어용노총의 체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연대하고 투쟁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만2년간의 투쟁의 성과를 토대로「전국노동조합혐의회(이하 전노협)」이라는 새로운 노동조합 전국조직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전노협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결산이며 새로운 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가중되고 있는 권력의 노동운동탄압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연대를 차단하는데, 그리하여 전노협의 건설을 왜곡·방해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이는 전노협이 탄압에 대항하는 투쟁가운데서 건설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

어쨌든 전노협이라는 「고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권력과 민주노조세력간의 대립은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글의 취지는 전노협 결성과 관련하여 민주노조운동과 기존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전망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선 기존 노총과는 별도의 독자적 틀을 갖는 전노협이 이미 결성과정중에 있다는 「현실」을 전제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이른바 「제2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노총)론-노총민주화론」을 둘러싼 한때의 논쟁이 노동대중의 「실천」에 의해서 정리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전노협 건설이 일정에 오른 이 시점에서 사실 제2노총(민주노총)의 문제는 전노협의 발전방향과 간련된 노총과의 관계, 특히 노총및 산별연맹하의 어용노조·중간노조에 대한 전노협측의 정책·실천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는 모든 자본주의국가의 노동자들이 이상으로 여기는 「1국 1중앙조직」이라는 단일 노총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성격이든, 어떤 경로로 건설된 것이든간에 「1국 1전국조직」이라는 모습의 단결을 생명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에게 일단은 소망스러운 것이다. 그런데도 애 민주노조세력은 그 안에서 활동할 생각을 하지 않고 별도의 독자적 조직을 만드려 하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첫째, 노총의 민주화는 가능하지 않으며, 노총은 그 기본 성격상 개조해야 할 조직이 아니라 무력화되어야 할 조직이라고 본다.

간판을 바꿔 달면서 40여간 이당의 노동계를 지배해온 어용노총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이라기보다 국가권력의 노동통제기구의  하나였다.

그들은「민주적 조합원」이라는 물위에 떠있는 한방울 기름과 같은 「어용집행부」가 아니라 (신)식민지체제하에서 어용노동기구는 비록 그 물질적 토대가 왜소한 것일지라도 40년이상의 세월을 거쳐 구조적·역사적인 존재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층노동자의 자발적 투쟁을 탄압하고 노동조합으로서의 당연한 임무인 경제투쟁도 방기해 온 허구적(사이비) 노동조합, 반공이념과 노사협조주의의 간판을 걸어놓고 국가권력의 기구가 되다시피 한 조직, 그것이 한국노총의 성격인 것이다.


  어용노총의 기초는 과거 전반적인 노동억압의 한편에서 길러져 온 반민주적 체계·사상·인맥등으로 이것은 요컨대 개조될 수가 없다. 오직 확고한 자기중심을 갖는 민주노조운동의 대중적 전개만이 노총을 무력화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올바른 노동전선의 통일을 위해 제2노총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한다. 이는 둘보다는 하나가 낫다는 저급한 상식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과 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처해 있는 노동자, 그리하여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는 모두 하나라는 뜻이다.


  그것은 노동조합 본연의 조직이념이며, 광범한 단결을 보증하는 요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본에 협력, 아부하고 권력에 기생하며 다른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부분까지도 「하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의 조직이든 노동전선의 통일이든 그 원리는 대중의 계급적·민주적 단결에 있다. 모든 나라 노동조합운동이 소망하는 「1국1중앙조직」 역시 계급적·민주적 단일조직인것이지 무원칙한 한 덩어리는 아닌 것이다.


  제2노총(민주노총)은 노동조합간의 (「제1노총과의」)건전한 경쟁을 통해 노동자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이 아니다. 새로운 전국조직으로서의 민주적 제2노총은 결코 선한 경쟁자 둘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셋째, 제2노총은 이땅의 전노동자대중을 민주적 대열로 합류하게 하는 민주기지이다. 현재 민주노조의 세력은 노총조직의 1/5도 되지 않는 소수이지만, 그 토대는 결코 양으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적 측면에서도 87년 여름 이전까지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어용과 무력이 어울려 지배해 왔으나 민주노조운동의 조직과 투쟁으로 인하여 이제 그러한 흐름은 변혁도상에 있다.

 

  전노협 또는 그것의 발전된 형태로서의 민주노총은 자신의 조직원의 권익을 앞세우는 조직이 아니라 어용노총이 철저히 외면해 왔던(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전체노동자계급의 정치·경제적 이익과 대의에 복무하고 조직·투쟁함으로써 어용노총의 간부가 아니라 그 산하의 대중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고 그들에게 민주노동운동의 열망과 용기를 북돋아 나갈 것이다.


  제2노총을 반대하는 근거로서 노총내 민주파의 입지 축소를 들어서는 곤란하다. 민주노조운동이 대중적으로 강화될수록 노총은 동요를 겪을 것이고, 또 실제로도 그래왔다. 민주노조들이 산별에서 이탈하고 의무금 따위를 내지 않기 때문에 궁지에 물려있는 연맹내 민주파라면 그들의 명칭(민주파)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현재로서 전노협에 합류하지 않고 노총에 잔류하는 「양심적」인 노조들이 있을 수 있으나, 아직까지도 그들의 입지는 민주를 열망하는 조합원 대중의 힘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민주노조운동의 전진과 노총의 동요를 견주어보라. 노동조합운동의 민주기지로서 새로운 노총의 필요성은 이미 현실로도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록 우리가 노총의 민주화 또는 그 와해를 전술적 방안으로 선택한다 하더라도 민주노조운동의 독자적 구심은 존재하고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대중투쟁의 진전으로 인해 와해되는 기존 노총질서, 그것을 추동하며 조직으로 술며하는 주체가 잇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한 「노총내 반대파」가 아니라 독자적 체계로서의 민주노조연합조직은 노총의 동요와 와해를 가속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건설중에 있는 전노협이 앞에서 말한 제2노총의 체제를 당장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노조가 노총과 산별에서의 활동을 거부하고 있으나 완전히 결별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어용노총과 대별되며, 것에 반대하고, 종국에는 그것을 타도한다는 명실상부한 민주노총으로서의 발전전망을 전노협은 갖고 있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 방향성을 선포하고 통일적 집행력을 갖춘 전국적 민주노조연합을 만드는가 하는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노협의 지도력강화, 조직확대 (어용노조민주화, 중간노조 견인을 포함한), 투쟁력(특히 노동법 개정등의 정치적욕구 투쟁)의 강화라는 주체적 조건에 좌우될 것이다.


  앞으로 정권이 다시 노총을 재편 강화해 준다해도 결코 노총이 민주노조세력을 제명하지는 못할것이다. 사실 한동안 봄바람을 타고 이뤄진 노총의 화려한 변신도 사실은 조직상의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제스츄어 역시 권력에 의해 연출되는 성질이 다분하여, 그렇지 않은 것은 기회주의성의 발로일 뿐이다.

  전노협은 당분간 자신의 역량조건을 강화하며 노총체계에 형식상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적절한 시기에 제2노총을 선포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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