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실습을 마치고

 

 골고다 길을 걷는 많은 이들은 교생실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비록 4주간의 실습기간이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더듬으면서 학생들과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서로의 실습경험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심지어는 아직까지도 대학생활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리움에 젖어있기도 하다. 나역시 처음 실습 나갔을때 하루가 한달처험 느껴지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4주는 참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추억속에서도 난 안타까운 현실을 기억해 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실습 나간 중학교의 학생들중에는 아직 한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게다가 한글 맞춤법을 틀리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 온 학생들이었지만 아이들의 수준은 초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교육법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기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6년이다.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6년간의 혜택을 주어야한다는 것 때문에 유급제도가 없는 것이다. 다라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밀리듯이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들어와 있는 학생들도 있게 된다. 교육을 받기 위해 필요한 기본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등보통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현실은 내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난 강남과 강북의 교육 격차를 심각하게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도덕교육에 있어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한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우리가 중· 고등학교때 배운내용과 동일한데 비해 아이들은 이미 신문 혹은 TV를 통해 말이 많은 통일문제에 대해 의문점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교생의 입장에서 교과서의 내용을 무시한 채 수업을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고민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교생들이 의식화 교육이라도 할까봐 개인면담을 주저하는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속에서도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교사로서의 자질을 4년간 훌륭히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은 현실이었다. 실질적으로 실습을 나간 이화인들이 훌륭한 능력을 인정받고 돌아왔지만, 교사에 대한 소망은 아직도 이루기 어렵기만 하다. 우리는 임시교원양성소가 아닌 교원양성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희망한다.


  아직도 나의 눈앞엔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눈동자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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