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음과도 같은 노동의 현실을 분연히 뚫고 일어선 노동자가 있었다. 79년 신민당사에서 YH폐업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여성노동자 김경숙.

 3일 성문 밖 교회에서 열린 「김경숙 열사 10주기 추모제」는 얼마 안되는 여성노동자들에 의해 조촐히 치러졌지만, 모여든 이들 모두가 가족처럼 친근해 보였다.

 70년대 여성노동자 모두의 모습이었던 김경숙열사의 삶은 그가 남긴 글을 통해 보듯 처절하다. 「어떤 회사에서는 봉급을 약 3개월 치를 받지 못했다. 헐벗고 굶주리며 풀빵 5원짜리 30원어치로 추위에 허덕이며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하청공장에서는 작업 때문에 일요일이 없었다.」이러한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임금과 형편없는 작업환경은 이들 여성노동자에게 노예가 되기를 강요한 것이다.

 결국 노동자의 생존권을 철저히 유린하고 강권통치를 일삼던 독재정권은 마지막 생존을 위해 폐업철회를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던 어린 여공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YH노동조합투쟁은 79년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18년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그가 죽음으로 거부한 독재정권의 강압통치와 노동자의 생존권 박탈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하다. 오히려 「고도성장」과 「복지국가」라는 거짓 허울 속에 숨겨진 채 노동악법과 위장폐업, 구사대의 이름으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날 추모제에서 김경숙열사는 노동자의 착취와 억압을 떨쳐버릴 「단결」과 「투쟁」의 교훈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이미 어린 여공은 울산현대 노동자의 아내와 어머니로, 대한광학, TC전자의 여성 노동자로 일어섰다. 「몸은 비록 병들었지만 마음은 상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리라」다짐하던 그가 이제 안일과 타성, 패배주의를 벗어버리고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여성노동자로 다시금 태어난 것이다.



이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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