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남­미술평론가 「출판미술」이란 용어는 아직 그리 일반화된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편집디자인」이니「북디자인」,「출판디자인」과 같은 용어가 주로 디자인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어온 편이다.

이들 중 가장 포괄적이고 의미상으로도 무리가 없어 보이는 「출판디자인」과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출판미술」은 그 개념의 외연으로 볼 때 서로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놔두고 굳이 「출판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것은 그 개념이 기존의 출판디자이너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아직까지 이렇다할 출판미술적인 작업을 펼쳐온 바 없는 민중 미술권의 화가들에 의해서, 그간의 미술의 창작관행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과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이라는 형태를 띠고 제안되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민중미술운동이 출판미술에 주목하게 되는데는 대체로 두 가지 맥락이 기재되어 있었다.

첫째는 80년대초반「현실과 발언」동인의 이론적, 실천적 작업속에서 배태된 새로운 소통형식에 대한 실험으로서, 이를테면 1인작가­수공적 제작­고립·자족적 전체로서의 작품­따블로회화­폐쇄된 전시장공간­소수유한층의 독점적 구매­투기 대상으로서의 고가의 환금성과 가치저장성­그 근간이 되는 일품성과 원작의 신화등으로 형성되는 종래의 지배적인 미술관행을 비판·극복하려는 노력속에서 그대안으로서 출판미술에 착안하게 된 것을 말한다.

둘째는 전체운동이나 대중들의 생활방식, 시·지각방식의변화에 따른 새로운 소통형식의 창출에 대한 객관적 요구로서, 특히 6월항쟁 이후 민중운동의 대중적 확산에 따라 본격적인 선전선동미술의 필요성이 증대한 것이라든가 대중들의 일상적인 시각적 체험에 보다 근접한 미술형식의 개발이 요구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출판미술은 막강한 기술복제력에 의해 대중적으로 널리 유포 내지 보금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용층의 계급계층적 구성이나 수용방식도 다양화·저변화·일상화하기에 용이하며, 그 소통언어에 있어서도 연속되는 지면 위에 문자텍스트와 시각이미지의효과적인 결합을 통해 보다 효과적이고 충격적인 설득이나 전달을 이루어낼 수 있는 미술장르라고 생각되었다.

출판미술이란 말 그대로 인쇄된 출판물을 최종적인 생산물로 하는 미술창작과정, 창작물, 그리고 그것의 다양한 활용의 과정들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통상적인 「책」이라는 형태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보다 폭넓은 다양한 종류의 인쇄물들을 포함해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책」이란 비교적 합법적인 유통구조를 취하면서 가장 집약된 노력과 제작과정이 요구되는 출판미술의 대표적인 형태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울러 현실의 다종다양한 요구에 적합한 새로운 출판미술의 형식들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출판미술의 유통경로에 있어서도 기존의 자본주의적인 유통경로 즉, 출판시장을 최대한 이용하면서도 새로운 진보적 유통경로의 창출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출판미술의 잠재적 가능성과 국내외의 진보적 사례를 검토하면서 우리의 민중운동과 출판, 출판미술의 현황에 눈을 돌려볼 때, 필자는 우리에게 있어 객관적으로 매우 커다란 잠재수요를 가졌으면서도 특히 저개발의 상태에 놓여있는 영역, 그렇기 때문에 특히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고 또 개발의 여하에 따라 무한한 생산의파급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해 보고 싶다.

① 정치포스터 :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치포스터는 정치선전선동미술의 총아라고 할만큼 금세기 정치미술의 대표적 잘르로 군림해왔다.

현재 출판미술에 주목한 상당수의 미술가들이 바로 이 포스터의 창작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노력에 비해서 우수한 정치포스터를 찾아보기가 힘든 형편이지만 조만간 진일보한 포스터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리라고 긍정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② 스티카 : 스티카는 그 뛰어난 기동성으로 인해 이제까지 비교적 꾸준히 쓰여온 편이지만 전체선정홍보의 전술속에서는 주변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포스터가 벽면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다소 고전하게 된다면 일종의 「작은 포스터」로서 풍부한 시각이미지를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스티카 작업을 시도해볼만하다.

③ 사회과학도서 일러스트 : 이른바 「사회과학의 대중화」라는 맥락에서 앞으로 커다란 수요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는 광범위한 교육적 성격을 갖는 대중출판물에 대한 출판미술·일러스트 작업·협의의 일러스트가 아니라 「쉽게 널리 밝힌다」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다양한 방식의 출판일러스트잡업니다.

④ 아동도서 일러스트 : 훌륭한 아동도서 일러스트는 우리의 어린이들을 참된 민주적인 시민으로서 키우지 위한 광범위한 아동교육용 도서나 동호의 출판에 있어서는 거의 필요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동용 도서의 넓은 시장을 감안한다면 아동도서 일러스트는 지속적·전업적인 창작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고 할만 하다.

⑤ 탁상출판(DTP)시스템을 이용한 광범위한 간이출판미술작업 : 컴퓨터를 이용한 출판방식은 제작의 간편성과 그것이 지닌 풍부한 출판디자인적 잠재력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간이 출판을 가능하게 해줄뿐만 아니라, 미술가들에게근 기존의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서 수규모의 자본으로 스스로 기획과 제작에 참여하는 새로눙 형태의 출판미술작업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⑥ 타이포그라피(Typograpy) : 역동적이고 힘있는 서체의 개발은 진보적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광범위한 출판, 출판미술작업의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⑦ 출판사진, 사진글 : 사진이 한쪽으로는 글과 다른 한쪽으로는 출판과 만나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출판사진·사진글은 기존의 사진에서 불충분하거나 결여되어 있던 내용적, 현실적 맥락을 부각시킴으로서 사진을 통한 총체적이고 효과적인 소통을 가느하게 해줄 것이다.

이 외에도 출판미술의 창작및 활용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출판미술의 잠재력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출판미술에 대한 탁월한 전문적 기량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비추어 현재 미술운동권의 역량은 크게 두가지 면에서 일천한 상태다.

그 하나는 그래픽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전문적인 경험과 기능이 거의전무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과 그림을 결합하는 데 있어서 아직 무척 서투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보강할 전문적인 훈련과 경험획득의 프로그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어차피 출판미술이란 새롭고도 생소한 창작방식이고 보면 화가들 스스로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계획과 자세를 가지고서 근본적인 토대에서부터 차근차근히 스스로를 단련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또 한편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기존의 출판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참여없이는 출판미술운동의 본격적인 전개는 대단히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어찌보면 소위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기형적·기계적인 이분법 속에서 소위 화가와 디자이너가 양분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양자가 서로 진실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만나야 할 필요성이 점점 증대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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