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활 탄압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끝나
정부의 농활 탄압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끝나
  • 이대학보
  • 승인 198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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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화)~20일(목), 하계 농촌활동 경북에서 실시. 고령군 입성 불허 농활 탄압 규탄대회 열리기도

「통일의 흙바람 안고 가자 우리들의 땅 농촌으로」라는 모토 아래 89학년도 하계 농촌활동(이하 농활)이 지난11일(화)~20일(목), 약35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경상북도 고령군, 안동군에서 실시되었다.

이번 농활은 예년과는 달리 서경원의원과 임수경양의 방북과 관련, 정국이 대대적인 탄압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입성식 도중 고령 농민회 회장이 연행되는등 처음부터 많은 혼란이 있었다. 「농민회」가 어느정도 기반을 다지고 있는 안동군에 반해 고령군이 경우는, 몇몇 마을의 동장과 새마을지도자들이 중심이되어 처음부터 강경한 입성 불허자세를 보여왔다.

이로 인해 법정대와 인문대 사회학과가 사전 답사때 이미 허가를 받았던 개진면과 쌍림면 7개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갑작스레 설정한 쌍림면과 덕곡면 3개 마을에 나뉘어 들어가기도 했다 .
 그리고, 이날 고령군에서 있었던 농활대환영집회에서 환영사를 낭독하던 석성만씨(고령농민회 회장)가 「정치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연행되고 본교 풍물패가 풍물을 압수당하였다.

한편, 20일(목)12시, 고령군 축산업협동조합 앞 삼거리에서는 3백여명으 농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석성만 회장 불법 구속 및 농활 탄압 규탄 대회 」가 있었다.

그러나 이 집회 역시, 「집시법 위반」을 내세운 전경들에 의해 강경 진압이 시작되었고 이과정에서 영남대생 6명이 연행되고 본교생 1명이 머리에 두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당하였다.

이와 관련해 학생과 농민들은 오후 1시부터 평화시위보장, 연행학우석방등의 4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며 가두에서 계속 선전전을 벌이다가 오후 5시쯤 평가회를 마치고 자진해산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통을 겪으면서도 농활은 농민회와 학생간의 뜨거운 노력으로 일정대로 진행 되었다.

일정을 살펴보면 11일(화), 본교 학생관 휴게실에서는 총학생회 총무부장 이명희양(과교 · 4)의 사회로 출정식이 있었다. 출정식에 이어 곧바로 경북 안동과 고령에 도착한 이들 농활대는 12일(수)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본 활동은 근로활동, 분반활동과 문화선전대의 문화 공연등으로 이루어졌는데 농활대는 18일(화)오전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오후엔 각 마을별로 마을잔치를 열었다.

한편 19일(수), 오전 11시 안동대학교에서는 안동농민회, 안동대, 이대, 추계예대로 이루어진 「안동지역 농촌활동 농민 · 학생 공동추진위원회」(이하농공추위) 주최로 3백여명의 농민 ·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수입개방저지및 농산물 제값받기 농민 · 학생 전진대회」가 있었다.

문선대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3부까지 진행된 본 집회에서 농공추위 학생대표였던 본교 이은영양(사생 · 4)은 농활보고를 통해『수입개방압력등 농민에게 직결된 문제와 더불어 임수경양의 방북의 의미와 같은 현시기의 문제들도 올바로 알리기위해 노력했다』라고 평가 했다.

한편, 본 농활기간 중에는 농공추위 주최로 「마을신문」이 제작 · 배포되었는데 안동군의 경우 3호, 고령군의 경우는 2호를 발간하였다.

현시기와 관련, 올해는 농활에 대한 탄압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대한 조직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