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항쟁 20주년 기념 특집

민주화가 성취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학사회의 민주화는 얼마나 진전됐을까. 80·90년대 대학생들이 정치활동 탄압·재단비리 등 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투쟁했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징계규정·활동허가원 제도 등에 반대하며 자치권을 확보하기 위한 외침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지역 4개 대학(고려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이 공동으로 대학생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우리 학교 학생 4명 중 1명은 학내민주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이 응답한 학생의 비율은 24.9%로 4개 대학 중 우리 학교가 가장 높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내 민주화 달성을 위한 개선사항으로 ‘학생의견 수렴’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외에 참여의식 확대·원활한 의사소통·학교정책에 학생의견 반영 등의 답변도 있었다.

의사결정과정에서 학생의견 반영 미미해

현재 학내에는 등록금책정협의회(등책협)·복지간담회 등 학교와 학생이 의견을 나누는 논의 자리가 종종 열린다. 과거에 없던 논의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형식적 민주화는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 대해 총학생회(총학)는 회의적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실제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매년 1학기 개강을 앞두고 등책협이 열리지만 실제로 양측이 등록금 인상률에 합의를 본 경우는 2005년 37대 총학이 유일하다. 올해 등책협에서도 양측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합의되지 않은 채 등록금 고지서가 발송됐다. 지난해 3월 38대 총학은 학교에 학생대표가 참여하는 등록금책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화캠퍼스센터(ECC)의 공간 배치 결정 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의견 반영은 부족했다. 총학이 학교 측에 학생대표가 포함된 공간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으나 학교 측은 ‘공간에 대한 협의는 불가능하다’며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올해 4월16일(월) ECC 설명회를 열어 ECC 내부 도면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는 이 자리가 일방적인 통보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양경언 총학생회장은 “협의회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해도 학교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학생을 논의주체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활동에 대한 제재는 여전

지난 3월 조형예술대학(조형대) 학생회는 등록금 인상률의 상한선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등록금 인상률 법제화’에 대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행정실에 책상과 이동게시판을 신청했다. 박민희 조형대 학생회장은 “행정실로부터 ‘학교의 정책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인문대 사회과학학회 실바람이 지난해 11월 개최했던 ‘노동운동사 강연회’도 외부 단체의 강연임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허위사실 기재)로 학교 측의 불허 조치를 받았다. 이혜정 실바람 회장은 “활동허가원 제도는 학교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억제하기 위한 교묘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학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활동허가원 제도가 자치활동에 걸림돌이 된다는 입장이다. 현재 동아리·학회 등이 행사를 열 경우 행사 시작 48시간 전까지 중앙동아리는 학생처장 승인을, 단과대 학생회·동아리는 소속대학 대학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동아리의 교내외 활동뿐 아니라 개별적인 교외활동·현수막과 포스터 게시·건물 사용을 위해서도 각 소속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서에는 지도교수의 서명·사용 목적의 구체적 서술이 요구된다. 신청서에 있는 ‘행사주관 단체’ 란에는 공동주최의 경우 참여단체를 모두 기재해야 한다. 김리나 동아리연합회 회장은 “학교는 활동허가원 제도를 통해 목적에 따라 학생 활동을 제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총학은 징계규정 역시 학생들의 자치권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월 공포한 우리 학교 ‘학생 징계 규정’에는 총 11가지의 징계사유와 이에 해당하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 내용 및 절차 등이 명시돼있다. 규정 중에는 ‘불법행사’·‘폭언’·‘학생의 본분에 어긋난 행위’ 등의 표현이 들어 있으며 징계 결정 이후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과정 및 규정은 없다. 양경언 총학생회장은 “학교는 징계규정을 통해 이화인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치언론에 대한 검열 계속돼

자치언론 기구에 대한 검열도 아직 남아있다. 교지편집위원회(교편위)는 발간 전 모든 원고 내용을 지도교수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지도교수의 확인을 받은 후에는 원고 내용을 학생처에 보내 발간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2005년에 교편위는 ‘동아리 자치권’·‘장학금 개편’에 대한 기사가 학교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한 학기 동안 인쇄비를 받지 못했다. 두 기사는 미흡한 학생 자치권 보장과 장학금 제도 개편을 비판한 글이다.

학교 측은 해당 글에서 사실이 왜곡된 부분·명예 훼손 우려가 있는 부분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교편위는 사실적인 오류에 대해서는 학생문화관 곳곳에 정정 자보를 붙였다. 그러나 그 외의 부분은 수정하지 않았다. 결국, 교편위는 학기가 거의 끝나도록 학교 측으로부터 교지대를 받지 못했다. 교편위는 학교 측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부분을 고치겠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나서야 교지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선정 교지 편집장은 “현재 지도교수님의 개입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자치언론인만큼 지도교수제를 통한 검열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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