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 이화학술원에 제언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대학은 어떻게 하면 ‘즐기는 자’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이어령 명예교수가 24일(화) 이화학술원 설립 기념강연 ‘知·好·樂의 학문과 학술원의 길’에서 이화학술원은 낙지자(樂之子:즐기는 자)를 양성하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학문의 즐거움’을 강조하며 “오늘날 우리가 불행한 것은 교육이 즐기는 자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의 대학은 시장논리에 따라 ‘취업학교’로 변질했다며 “대학은 학문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상아탑’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추어(amateur)에서 ‘아마(ama)’는 사랑한다는 의미다. 대학에서는 프로보다 학문을 사랑할 줄 아는 아마추어를 양성해야 한다.”이어령 교수는 시카고 대학의 사례를 들어 학문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했다. 시카고 대학의 한 물리학 교수는 수강생이 2명뿐인데도 수업을 폐강하지 않고 끝까지 진행했다. 그 중 한 학생은 노벨상을 탔으며 6년 후 교수 역시 노벨상을 받았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화여대가 강의인원에 상관없이 진정한 낙지자를 양성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일부 교수의 논문 표절 문제도 학문에 대한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면서 학문의 재미를 잃어버린 교수들이 논문을 표절하는 것이다. 학문이 즐거웠다면 표절까지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령 교수는 학문의 즐거움 외에 문화적 상상력도 강조했다. 그는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대학에서는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모범답안이 아닌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와 같은 창조적인 발상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회통(會通) 즉, ‘함께 뛴다’는 정신으로 학계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화학술원이 학제 간 통합을 모색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돗자리 짜는 사람에게 민자 돗자리를 주문하면 지루해하는 반면 꽃무늬가 들어간 돗자리를 부탁하면 즐겁게 만든다”며 “민자 돗자리를 만드는 학문이 아닌 아름다운 무늬를 창조하는 학문을 하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