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길의 네덜란드 통신<4>

한창 과제와 중간고사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름아닌 조 과제, 일명 ‘팀플’이다. 이화에 있을 때도 팀플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실 뜻이 잘 맞고 성실한 사람들을 만난다면야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성과는 물론 보람도 배가 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소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도 팀플 때문에 얼굴 붉히고, 싫은 소리한 기억이 몇 번 있다.

이곳에서도 팀플의 고난은 계속 되고 있다. 일단 거의 모든 수업에 팀 과제가 있고, ‘Human resource management’나 ‘international communication’의 경우엔 매 주마다 있다.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역시 관건은 함께하는 팀원이다. 만나는 팀원에 따라 즐거운 작업이 되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악몽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팀원의 유형이 한국에서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회의 빠지는 ‘무임승차’형, “내 말만이 맞다” ‘독불장군’형, 말은 많으나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안 되는 ‘빅마우스’형, 국적과 성별은 다르지만 이 세 가지 유형은 어디에 가나 만나게 된다.

물론 국적별로도 나름의 특정 성향이 있다. ‘international management’ 수업 때의 일이다. 한 네덜란드 학생이 손을 들더니 중국 학생들과는 팀플 못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절대 먼저 의견을 내놓는 적이 없고, 무슨 말을 해도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대꾸하는 데 도저히 답답해서 못 참겠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다음 프로젝트 때 나와 같은 팀이 되었다.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건만 아니나 다를까. 알고 보니 그녀는 ‘침묵형’보다 더 얄밉다는 ‘무임승차’형이었다.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팀원 모두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런 일의 방지를 위해 ‘Human resource management’ 수업에서는 프로젝트 시작 전 팀 계약서를 작성하게 한다. 여기에는 “2회 이상 회의 불참 시 선생님께 보고 및 감점” 등 여러 조항이 담겨있다. 조항은 팀원이 함께 상의해서 만들어야 하고, 이에 대한 동의의 서명 역시 필수다. 학기의 반이 다 된 지금, 이 계약서는 제 역할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달리 이곳 학생들은 같은 팀이라고 해서 절대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보고하고, 또 감점을 요구한다.

아직 팀플이 많이 남았다. 고생하는 만큼 배우는 거라지만 어째 별 위로가 되진 않는다. 소위 ‘까칠해지는 것’만이 이 팀플의 늪에서 살아남는 법. 소심한 내겐 너무 가혹하다. 많은 이화인들 역시 지금 팀플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진심 어린 격려와 함께 당부 한 마디,

“그러니까 우리 힘들지 않게 서로 서로 잘합시다!”

김묘길(언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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