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경사로 부족, 가파른 언덕 많아 혼자 이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사진: 김하영 기자
모든 것이 낯설다. ATM에 카드를 넣기 위해 한 손으로 기계를 짚고 몸을 지탱한 상태에서 반대 편 팔을 힘껏 뻗었다. 간신히 카드를 넣었지만 이번에는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화면을 보기 위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고, 일부러 시선을 피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시선 속에 ‘휠체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는 5일(목)∼12일(목), 일주일간 장애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자는 하지마비·절단·시각·청각장애 중 체험할 분야를 선택한 후, 소품을 이용해 신체 기능을 일부 제한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팔에 두꺼운 합지를 대고 붕대로 감아 손과 팔의 관절을 사용할 수 없게 하고, 이어플러그를 이중으로 귀에 꽂아 청력을 감소시킨다. 기자는 5일(목), 휠체어를 타고 하지마비 장애인의 불편함을 직접 체험했다.

오전9시50분, 학생문화관 4층에서 장애체험이 시작됐다. 다리에 힘을 줘서는 안 된다는 말에 휠체어에 앉자마자 하반신에 힘을 뺐다. 1미터의 눈높이로 보는 세상은 사람도, 사물도 모두 크기만 하다.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하고, 불과 1센티미터의 문턱을 지날 때도 덜컹거리는 휠체어에 불안하기까지 하다.

모든 건물 입구에는 빗물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턱’이 만들어져 있다. 휠체어를 타고서는 계단은 물론이고, 낮은 ‘턱’조차 그대로 지날 수 없기에 반드시 경사로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교내 건물 중 경사로가 제대로 설치된 경우는 드물다.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학생문화관에는 정문 옆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만, 기준 규격보다 경사가 높다. 이화-포스코관(포관)역시 ‘턱’이 있는 곳마다 경사로가 있지만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경사로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본관 등 역사가 오래된 건물에는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를 타고서는 접근할 수 조차 없었다.

힘겹게 경사로를 이용해 건물 밖에 나오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본교는 지형적 특성상 가파른 언덕길이 대부분인데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배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서는 휠체어를 뒤로 돌려 활동보조인이 휠체어를 잡고 뒷걸음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휠체어에 탄 사람과 보조인 모두 위험해질 수 있다. 학생문화관에서 대강당까지, 대강당에서 포관까지의 길을 직접 다녀본 결과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이동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경사가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에 보조인 1명으로도 힘들었다. 실제로 학생문화관에서 본관방향의 경사길에서는 커브까지 돌아야 하는 이중고 때문에 3명이 휠체어를 끌어야 했다.

사회봉사센터 장애학생지원업무 담당자 고윤자씨는 “학기말에 간담회를 통해 장애학생들의 불편사항을 접수하고 있다”며 “작년 5월에 약대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수요조사가 필요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공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내에 경사로가 적은 것에 대해서는 “다른 학생들이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건축 기준에 맞게 지어야 하므로 모든 턱에 경사로를 댈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틀린그림찾기 김은비씨(특교·2)는 “새로 지어진 건물에는 비교적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포관·교육관의 경우 외관상 보기 좋게 하기위해 계단 사이사이를 뚫어놓았는데, 시각장애인들이 다닐 때는 발이 빠질 수도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날 청각장애를 경험한 곽연준(컴퓨터공학·2)씨는 “정적이 흐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울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질 정도였다.”며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 이상, 걸을 때도 이야기 할 때도 울림이 심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틀린그림찾기 김은비씨는 “장애 체험을 통해 참가자들이 다른 사람의 불편함,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윤경 객원기자 1025y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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