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문학 답사기

사진제공 : 국문과 학생회
공중에 이슬이 맺혔다. 이른 아침부터 뚝뚝 떨어지던 봄비는 찰박한 물 바닥을 만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랜만에 가는 소풍날 비가 올게 뭐람.’ 하루 종일 질척한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마음도 몸도 찝찝했다.

관광버스 유리창에는 한참동안 아파트가 보였다. 도시화된 경치에 질려 곧 잠이 들었다. 벌판에 1910년대 마을 지주의 집일 법한 큰 집이 덩그러니 서있다. 뿌연 안개와 어둑어둑한 조도 때문에 아직도 꿈에서 덜 깬 기분이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중략)...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하여 동명(洞名)을 ’실레‘라 부른다.’ 여기가 김유정의 수필 ‘오월의 산골작이’ 첫 머리에 소개된 춘천시 신동면의 실레마을이다.

김유정이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실레마을은 그의 정서적 고향이자 문학적 자산임이 확실하다. 김유정은 대부분의 작품 배경을 실레마을로 했다. ‘봄.봄’과 ‘동백꽃’의 점순이도 실레마을 주민이었다. 생가 뜰에서는 ‘동백꽃’의 무대인 금병산이 보인다. 날씨만 맑았더라면 양 볼이 새빨개진 점순이가 동백꽃이 흐드러진 산자락에서 달려 나올 것 같다. 작품 속 백의민족의 땀 냄새와 대지의 흙냄새는 이 곳 실레마을의 향기인 셈이었다.

김유정 문학촌에는 그의 생가와 기념관, 휴식정(休息庭)과 연못 등이 있다. 초가지붕을 올린 전통가옥임에도 생가는 새 집 같은 느낌이다. 불탄 생가를 복원해 2002년 새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손때를 묻힐 수도 없는 일이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생가뿐만이 아니다.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흔적이 닿은 물건이 하나도 없다. 유품과 유고작은 휘문고보 시절 친구인 안회남이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문학촌에는 김유정의 자취가 서려있다. 아마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만들고 지키고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모를 일이지. 김유정이 살고 있는지도.’ 전시된 생활기록부의 95명 중 84등이라는 성적에 인간미를 느끼는 나를 엄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생가 뒤에 수줍게 심긴 동백꽃 4그루가 귀엽다. 실은 줄곧 서울에만 살아서 동백꽃인줄도 몰랐다. 무식함에 대한 핑계라 생각해도 좋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동백꽃을 남쪽지방에서 피는 빠알간 동백으로 착각한다. 소설 ‘동백꽃’은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강원도 동백은 노란 생강나무의 꽃이다. 그것은 개나리보다 고아한 노란빛이다. 3월 말 생강나무는 은근히 뼈 속을 파고드는 꽃샘추위로 꽃봉오리만을 겨우 달고 있었다.

“말없이 뜰을 거니는 분도 계시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손님도 있지요.” 이곳을 지키는 손윤권 사무국장이 입을 뗀다. 그는 학생들에게 김유정을 설명해줬다.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았는지 숨 쉴 틈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듣는 이들도 숨을 죽이고 김유정을 가슴에 담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는 김유정을 중심으로 1930년대 작가를 연구하는 강원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김유정을 만났기 때문에 이 산천초목이 의미 있습니다.”라며 감상에 젖었던 모습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김유정 문학촌은 담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레마을 전체가 29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김유정 혼의 안식처다. 대문을 나서면 시야에 가득 차는 금병산, ‘봄.봄’의 욕쟁이 장인 ‘김봉필’의 집. ‘산골 나그네’에서 들병이가 남편을 숨겨놓았던 ‘물레방아 터’ 등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살아 숨 쉰다. 빡빡한 일정으로 마을구경을 못한 점, 궂은 날씨 탓에 생가 앞 흙을 만지지 못한 점이 자꾸 아쉬움의 꼬리를 밟았다. 결국 나는 4월 4일(수) 본능적으로 다시 김유정의 생가를 찾았다. 역 이름마저 ‘김유정’인 실레마을을 마냥 걸었다.

며칠 새 동백꽃이 활짝 피었으며, 햇살이 따사로웠다.

김혜경(국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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