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과 3학년 안나

내 방에서 가장 힘이 센 건 벽시계다. 내가 나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벽시계가 날 조종하는 것 같다. 누가 지옥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옥이란 지각해서 뛰고 있는 그 공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있다. 시간과 싸우는 것이다. 시간이 남기고 간 주름과 싸우며,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했더니 생긴’ 뱃살과 싸운다.

오래전부터 시작보다 끝을 더 좋아했다. 일분, 이분은 숨이 막히지만 52분, 53분은 정말 좋다. 월초는 너무 막막하고 두렵고 답답하다. 그에 비해 월말은 행복하다. 끝나는 시간은 다음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시간 자체보다 시간을 계획하는 일에만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즐겁게 생각해 둔 계획은 시작과 함께 어그러져 버린다. 그것을 알면서도 항상, 모든 시간의 끝 무렵에는 다음을 기약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른 인세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많은 돈으로 무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자유를 사고, 자신의 시간을 산다고 했다. 그게 가장 비싼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도 내 시간을 살 정도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점점 시간이 주는 한정성과 영속성의 사이에서 가파르게 줄을 타게 된다. 죽지 않는 한 시간은 주어지지만, 인생의 각 요소에는 꼭 마감이라는 것이 있어서 한계에 맞닥뜨리게 되고 결국 시간에 지배당한다.

가끔 영화에 시한폭탄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그 때가 가장 긴장되고 초조하다지만, 나는 남은 시간이 일초씩 줄어드는 그 때가 가장 편안하다. 진정한 평등이 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와 기준과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지닌 시간을 소모하며 싸우고 있다. 그래서 모든 불평등의 합은 다시 평등이다.

우리는 다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애정을 갖게 된다. 시간이 대표적인 예다. 흔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 ‘애틋한 추억’이라는 말을 쓴다. 사랑에 빠진 사람보고 콩깍지 씌었다고 하듯 어떤 힘들었던 기억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힘들었음’이 100% 지속이 안 되고 심하게는 ‘그리워’지기 까지 한다. 우리가 입시를 통과해 오면서 그렇게 많이 괴로웠어도 가끔 고등학생 때가 그립다고 여기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나는 이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이불을 몽땅 세탁기에 넣고 오늘은 이불이 없으니 도서관에서 잔다는 둥 객기를 부린다. 자취를 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밀린 빨래, 밀린 설거지, 밀린 반찬 정리, 밀린 프린트 정리를 하는데, 앞으로 걸어가기 보다는 걸어오면서 빠뜨리고 온 물건을 줍는 시간이다. 어쩌면 알고 뛰어든 호랑이 동굴이지만 나중에 이때를 회상할 걸 생각하면 즐겁다.

모든 일들에 항상 출구를 마련해 두었는데 시간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흐린 아침 널어놓았던 빨래가 갑자기 환하게 갠 날의 맑은 햇볕과 청명한 바람 속에서 바삭하게 깨끗하게 마르는 느낌을 아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내가 손쓸 수 없는 부분까지도 침투해서 작용해 주는 고마운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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