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로 봉사캠프 다녀온 박정은(화학·3)씨

 박정은 씨가 봉사활동 중에 만난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 캄보디아에 한류 동요 바람이라도 분 것일까. 한글을 써본 적도 없을 아이들이 올챙이송이며 곰세마리를 부르며 춤을 췄다. 더욱이 노래를 먼저 부른 것은 우리가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이전에 왔던 한국 봉사자들이 알려준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용케도 율동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기만 했다. 1월31일(수)∼2월14일(수)까지 15일 간의 캄보디아 봉사캠프는 이렇게 신기하고 감동적인 경험으로 시작됐다.

 

1학년 때 국제교류박람회에 참석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글로벌 피스 메이커스’(GMP)라는 시민단체를 통해 다녀온 캄보디아 봉사캠프는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특히 즐거웠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에 위치한 선교시설(missionary charity)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고아들이 머무는 이곳은 의료시설이 열악하다. 어머니로부터 에이즈에 감염돼 매일 약을 복용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처음에는 낯선 이의 관심을 어색해 하다가도 이내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

 

우리는 그곳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창문 먼지를 닦는 것에서부터  아이들의 옷가지를 빨래하는 것까지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아이들에게 위생관념을 심어주고자 ‘손을 깨끗이 씻자’는 주제로 인형극도 했다. 아이들이 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 같이 손을 씻고 반복 학습을 했으니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곳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두 번째 활동장소로 이동했다. 그곳 역시 선교시설로 앙코르와트가 있는 도시인 씨엠립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는 벽화 작업을 했다. 재미있고 쉬운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내 발을 무는 수많은 개미와 벌인 신경전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사포로 벽을 밀면 사방으로 묵은 먼지가 날리는 것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고생 끝에 우리는 고래가 뛰어노는 바다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유치하고 단순한 그림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벽화보다도 멋있었다.

 

세 번째 봉사활동 지역은 최근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오지였다. 이곳의 아이들은 예전에 만난 아이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별을 너무 너무 많이 경험해 헤어질 때의 슬픔을 잘 알고 정을 잘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계속 아는 척을 하며 말을 걸고 장난도 치자 아이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뭐 하나 크게 해준 것도 없는데 떠나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한없이 따뜻한 사람들.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는 과연 봉사를 하고 돌아온 것일까? 항상 봉사활동을 한다는 구색으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언제나 나는 그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오는 것 같다. 낯선나라 캄보디아에서의 15일은 내 가슴 속에 남아 행복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항상 새기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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