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버리고 가운을 택한 의전대 새내기 이영이씨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때 제 삶이 가장 가치있게 느껴져요.”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에서 도쿄 특파원·국제부 차장·주말판 ‘위크엔드’ 팀장까지 18년을 신문사에서 살아온 이영이(44)씨. 그는 신문사 중견간부라는 안정된 길을 마다하고 용기 있게 도전한 끝에 본교 의학전문대학원(의전대)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의 목표는 기자가 아닌 의사였다. 그러나 독일어 교생선생님의 영향으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세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장애인·빈곤층 등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기자에 도전했고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자가 된 후에도 그의 마음 한 편에는 ‘의사’라는 꿈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늘 고민했죠. 그러나 기자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어 안타까웠어요.”


2005년 1월, 그는 지인의 소개로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들과 함께 네팔로 여행을 갔다. 여행에서 이씨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네팔의 어느 동네에서 팔이 부러진 아이를 만났어요. 의사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치료해주는 것을 지켜봤죠. 언제 어디서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들이 부러웠어요.” 자신의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한 그는 여행 중에 남편에게 의사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평소 그의 꿈을 알고 있었던 남편은 물론 함께 여행했던 의사들까지 그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네팔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영이씨는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의전대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40대니까 4수까지 기회를 주겠다”는 남편의 응원 속에서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오후1시까지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빈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저녁에는 동네 독서실을 찾았다. ‘될 때까지 한다’는 의지로 도전했던 그는 공부를 시작한지 1년 반 만에 본교 의전대에 합격했다.


이영이씨의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려는 딸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늦깎이 공부의 장점도 있었다고 말한다. “의전대 입학을 준비하는 젊은 수험생들은 연애·친구 등 이것저것 많이 신경이 쓰이죠. 그런데 저는 나이가 들어 생활이 안정되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그는 생물·화학 공부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그답게 의전대 졸업 후 계획에도 ‘봉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분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인력이 부족한 시골 보건소에서 일하거나 해외를 돌아다니며 의료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에요.” 입학을 앞두고 이영이씨는 한의사인 지인을 통해 한의학에 대해서도 지식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졸업 후 첫 20년은 정열을 바치고 싶은 일에, 다음 20년은 보람있는 일에, 또 나머지 20년은 베풀 수 있는 일에 도전하세요.”


50세에 의사가 돼 20년 동안 진료를 하는 것이 목표라는 이영이씨. ‘꿈은 삶의 원동력’이라는 그에게서 새내기 입학생의 패기가 느껴진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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