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이 배 용

이화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인 이대학보의 쉰세 번째 생일을 모든 이화가족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954년 전후(戰後)의 폐허 속에서 하나의 작은 씨앗으로 뿌려졌던 이대학보의 성장과정은 우리 이화의 출발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이화의 시작이 어둠속의 한국 여성들을 지식과 배움의 새 빛 속으로 인도한 것이라면 이대학보의 창간은 이화만의 개척정신을 담은 젊음의 패기와 도전이었습니다. 이화의 시작이 작고 미약했지만 121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대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성장한 것처럼 이대학보는 대사회적이며 미래지향적이었던 출발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이제 대학문화의 선도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총장이 되기전 이화역사관장을 지내면서 이대학보 50년을 통해본 이화역사 사진집의 간행작업을 주도하는 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이화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수만 장의 이대학보 사진 자료들을 살피면서 저는 무한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신문은 시대의 생생한 기록이자 살아있는 역사라는 말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역사 연구가 ‘과거를 통한 미래의 탐구’이듯 신문은 과거의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오늘과 미래를 읽는 한 장의 지도입니다.
이대학보가 이화공동체의 현실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읽어내면서,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와 바람을 수렴하는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만큼 역사의 기록자로서 먼 훗날, 오래된 신문을 뒤적이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이대학보에 대한 저의 소망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총장 취임사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진정한 대학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지표들에 의한 피상적인 경쟁력이 아닌, 참으로 고상하고 인정 많고 인간다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는가에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바로 진정한 대학문화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학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를 앞장서서 주도하고 창출하려는 노력은 이대학보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지식정보사회와 세계화로 요약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문화와 문명의 가치가 중요해 질 것입니다. 대학의 중요한 소임 중 하나인 학문 연마와 연구 또한 문화와 문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대학보를 통해 이화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오늘의 여러 모습과 더불어 미래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 귀한 담론들을 접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이대학보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신문입니다. 이대학보는 이화인들의 진정한 소통과 끈끈한 화합을 위한 가교여야 합니다. 2만여 이화가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때로는 뜨거운 가슴으로, 때로는 냉철한 이성으로 전달하여야 합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원하는 정보를 보편적 가치로 판단하고, 정확하고 생생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대학보가 이화와 이화인들의 열린 광장으로서, 첨단과학기술문명의 높은 파고(波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가치와 정신을 맑은 거울처럼 비추어 주기를 당부합니다.

이대학보가 창간 53주년을 맞기까지 이 소중한 신문을 지켜오신 수많은 전현직 학보사 기자들과 주간 및 논설위원 교수님들의 노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화가족 모두와 함께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이대학보의 새로운 백 년, 새로운 천 년을 기원합니다.

2007년 2월 12일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이 배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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